注
殆는 謂危亡也라 垂沙는 地名이나 未詳所在라 漢地理志에 沛郡有垂鄕하니 豈垂沙乎인저
史記楚懷王二十八年에 秦與齊韓魏共攻楚하여 殺楚將唐昧하고 取我重丘而去라하니라 昧는 與蔑同이라
韓詩外傳及淮南兵略篇엔 竝作兵殆於垂沙하고 楚策云 垂沙之事에 死者以千數라하니 則作垂沙者是라
그런데도 군대가 수사垂沙의 전투에서 위험한 지경에 처하여 대장 당멸唐蔑이 전사하였고,
注
양경주楊倞注:태殆는 멸망의 위기를 이른다. 수사垂沙는 땅이름이나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패군沛郡에 수향垂鄕이 있으니 그곳이 혹시 수사垂沙인지 모르겠다.
≪사기史記≫ 〈초세가楚世家〉에 의하면 초楚 회왕懷王 28년에 “진秦나라가 제齊‧한韓‧위魏와 함께 초楚나라를 공격하여 초楚나라 장수 당매唐昧를 죽이고 우리 〈초楚나라의〉 중구重丘를 빼앗은 뒤에 떠나갔다.”라고 하였다. 매昧는 ‘멸蔑’과 같다.
○노문초盧文弨:수사垂沙는 ≪사기史記≫ 〈예서禮書〉에 ‘수섭垂涉’으로 되어 있다.
왕염손王念孫:살펴보건대, ‘
수垂’자는 옛날에 ‘
타陀’자처럼 읽었으니,
注+이에 관한 설명은 ≪당운정唐韻正≫에 보인다. 수사垂沙는 대체로 땅이름으로서
첩운疊韻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 및 ≪회남자淮南子≫ 〈병략편兵略篇〉에는 모두 ‘병태어수사兵殆於垂沙’로 되어 있고,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 “수사垂沙의 전투에서 죽은 사람이 천 명을 헤아렸다.”라고 하였으니, ‘수사垂沙’로 된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