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12 使民則綦理
라 辯政令制度
는 所以接
下之人百姓
이니 有非理者如豪末
이면 則雖孤獨鰥寡
라도 必不加焉
이라
注
○王念孫曰 案天下之人百姓의 天字는 後人所加也라 下者는 對上而言이라
上文云 上之於下에 如保赤子라 政令制度는 所以接下之人百姓이니 有不理者如豪末이면 則雖孤獨鰥寡라도 必不加焉이라하니 文正與此同이라
又王制篇云 之所以接下之人百姓者는 則庸寬惠라하고 又云 之所以接下之人百姓者는 則好取侵奪이라하고
又云 之所以接下之人百姓者는 則好用其死力矣로되 而慢其功勞하고 好用其籍斂矣로되 而忘其本務라하고
議兵篇云 其所以接下之人百姓者는 無禮義忠信이라하고
彊國篇云 今上不貴義
하고 不敬義
하니 如是
면 則下之人百姓
이 皆有棄義之志
하고 而有趨姦之心矣
注+人百姓은 猶言衆百姓이라 王霸篇曰 朝廷群臣之俗若是면 則夫衆庶百姓도 亦從而成俗不隆禮義而好貪利矣라하니 語意略與此同이라 彼言衆庶百姓은 猶此言人百姓也라 又見下라라하니 皆其證也
라
又案 下之人百姓者의 人은 衆也니 謂下之衆百姓也라 儒效篇云 塗之人百姓이 積善而全盡을 謂之聖人이라하니 亦謂塗之衆百姓也라
師彖傳曰 師는 衆也라하고 爾雅曰 師는 人也의 郭注曰 謂人衆이라하니 是人與衆同義라
春秋隱四年衛人立晉의 公羊傳曰 其稱人何오 衆立之之辭也라하고 穀梁傳曰 衛人者는 衆辭也라하며
曰 人無譁
의 鄭注曰 人
은 謂軍之士衆
이라하고 史記鄒陽傳
의 人無不按劍相眄者 漢書
에 人作衆
하니 皆其證也
라
백성을 부리는 일은 극히 합리적으로 하여야 한다. 정치법령과 제도를 제정하는 것은 이것으로 하부의 뭇 백성을 대하기 위한 것이니, 〈만약 그 제도가 백성들을 대하는 면에서〉 불합리한 점이 털끝만큼이라도 있다면 비록 아비 잃은 아이나 자식 없는 노인이나 홀아비나 홀어미 〈같은 무력한 사람들이라도〉 반드시 그 법을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
注
○왕염손王念孫:살펴보건대, ‘천하지인백성天下之人百姓’의 ‘천天’자는 후세 사람이 추가한 것이다. 하下는 상上과 짝을 맞춰 말한 것이다.
윗글에 “상지어하 여보적자 정령제도 소이접하지인백성 유불리자여호말 즉수고독환과 필불가언上之於下 如保赤子 政令制度 所以接下之人百姓 有不理者如豪末 則雖孤獨鰥寡 必不加焉(군주는 백성에 대해 갓난아기를 보호하듯이 한다. 정치법령과 제도는 하부의 백성들을 대하기 위한 것이니, 〈만약 그 제도가 백성들을 위하는 면에서〉 불합리한 점이 털끝만큼이라도 있다면 비록 아비 잃은 아이나 자식 없는 노인이나 홀아비나 홀어미 〈같은 무력한 사람들이더라도〉 반드시 그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이라 하였으니, 문구가 정확히 이곳과 같다.
또 〈왕제편王制篇〉에 “지소이접하지인백성자 즉용관혜之所以接下之人百姓者 則庸寬惠(그들이 하부의 백성을 대하는 태도는 그저 평범하게 관용과 은혜를 베푸는 정도이다.)”라 하고, 또 “지소이접하지인백성자 즉호취침탈之所以接下之人百姓者 則好取侵奪(그들이 하부의 백성들을 대하는 태도는 재물 거두기를 좋아하여 약탈을 자행하는 것이다.)”이라 하고,
또 “지소이접하지인백성자 즉호용기사력의 이만기공로 호용기적렴의 이망기본무之所以接下之人百姓者 則好用其死力矣 而慢其功勞 好用其籍斂矣 而忘其本務(그들이 하부의 백성들을 대하는 태도는 백성들이 사력을 다하길 좋아하면서도 그 공로를 중시하지 않으며, 세금을 과중하게 징수하길 좋아하면서도 백성들이 종사하는 농업을 돌아보지 않는다.)”라 하고,
〈의병편議兵篇〉에 “기소이접하지인백성자 무례의충신其所以接下之人百姓者 無禮義忠信(그들이 하부의 백성을 대하는 태도는 예의禮義와 충신忠信이 없다.)”이라 하고,
〈
강국편彊國篇〉에 “
금상불귀의 불경의 여시 즉하지인백성 개유기의지지 이유추간지심의今上不貴義 不敬義 如是 則下之人百姓 皆有棄義之志 而有趨姦之心矣(오늘날 군주는 도의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도의를 존중하지 않으니, 이렇게 되면 하부의 백성들이 모두 도의를 지향하는 뜻을 버리고 간사한 쪽으로 달려가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注+인백성人百姓은 ‘중백성衆百姓’이라 말한 것과 같다. 〈왕패편王霸篇〉에 “조정군신지속약시 즉부중서백성 역종이성속어불륭례의이호탐리의朝廷群臣之俗若是 則夫衆庶百姓 亦從而成俗於不隆禮義而好貪利矣(조정 뭇 신하들의 습속이 이와 같으면 뭇 백성들도 따라서 예의禮義를 존중하지 않고 재리財利를 탐내기를 좋아하는 습속을 형성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말뜻이 여기의 경우와 대략 같다. 저쪽(〈왕패편王霸篇〉)에서 ‘중서백성衆庶百姓’이라 말한 것은 여기서 ‘인백성人百姓’이라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사례가〉 또 아래에 보인다. 이것이 모두 그 증거이다.
또 살펴보건대, ‘하지인백성자下之人百姓者’의 인人은 ‘중衆’의 뜻이니, 하부의 뭇 백성을 이른다. 〈유효편儒效篇〉에 “도지인백성 적선이전진 위지성인塗之人百姓 積善而全盡 謂之聖人(길 가는 하부의 백성들이 선행을 계속 쌓아 진선진미한 경지에 도달한 것을 성인聖人이라 이른다.)”이라 하였으니, 이 또한 길 가는 뭇 백성을 이른다.
≪주역周易≫ 사괘 단전師卦 彖傳에 “사師는 ‘중衆’의 뜻이다.”라 하였고, ≪이아爾雅≫에 “사師는 ‘인人’의 뜻이다.”라고 한 곳의 곽박郭璞 주에 “사람이 많은 것[인중人衆]을 이른다.”라고 하였으니, 이로 볼 때 ‘인人’과 ‘중衆’은 같은 뜻이다.
≪춘추春秋≫ 은공隱公 4년 “위인립진衛人立晉(위衛나라 사람들이 공자 진公子 晉을 임금으로 세웠다.)”이라 한 곳의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인人’이라 칭한 것은 무슨 뜻인가? 많은 사람이 그를 옹립했다는 말이다.”라 하고,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 “위인衛人이란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라고 하였으며,
≪서경書經≫ 〈주서 비서周書 費誓〉에 “인무화人無譁(사람들이여, 시끄럽게 하지 말라.)”라 한 곳의 정씨鄭氏 주에 “‘인人’은 군대의 병사들이 많은 것을 이른다.”라 하고, ≪사기史記≫ 〈추양전鄒陽傳〉의 “인무불안검상면자人無不按劍相眄者(사람들이 칼을 어루만지며 흘겨보지 않는 일이 없다.)”가 ≪한서漢書≫에는 ‘인人’이 ‘중衆’으로 되어 있으니, 이것이 모두 그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