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君子正己則以繩墨하고 接人則牽引而致之니 言正己而馴致人也라
言君子裁度己身則以準繩하고 接引人倫則用舟楫하니 謂律己嚴而容物寬也라
抴는 船旁板也라하고 段氏玉裁說文注云 按毛詩傳에 楫은 所以擢舟也라
淮南說山訓曰 㯳不正而可以正弓
이라하니 此即用枻之義
라注+㯳同檠이라
王念孫曰 案考工記弓人의 恒角而達이면 譬如終紲에 鄭注曰 紲은 弓䪐也라하고
秦風小戎篇의 竹閉緄縢에 毛傳曰 閉는 紲也라하고
小雅角弓傳曰 不善紲檠巧用
이면 則翩然而反
이라하고 의 弓有柲
에 注曰 柲
는 弓檠
이라
紲與枻同하고 閉與柲䪐同하니 即淮南所謂可以正弓者也라
枻은 與繩對文이니 若訓爲牽引이면 則與繩不對라 若訓爲楫이면 則於義愈遠矣리라
注
양경주楊倞注 : ‘설抴’는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도기度己’는 자기 몸을 바로잡는다는 뜻의 ‘정기正己’와 같다.
군자가 자기 몸을 바로잡는 것은 먹줄을 놓듯이 하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이끌어 바른 길로 가게 한다는 것으로, 자기 몸을 바르게 한 뒤에 남을 이끌어주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설抴’는 마땅히 ‘예枻’가 되어야 하니, ‘예枻’는 노이다.
마치 노를 저어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한시랑韓侍郞은 “‘설枻’는 도지개이니, 활을 바로잡는 기구이다.”라고 하였다.
○
노문초盧文弨 : 옛 판본에는 ‘
설抴’와 ‘
설枻’가 잘못 혼용된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모두 고쳐 바로잡았다.
도지개
한씨韓氏의 설은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근거한 것이다.
학의행郝懿行 : ‘설抴’의 음은 여余와 제制의 반절反切이니, ‘예曳’와 음과 뜻이 모두 같다.
‘설抴’는 곧 ‘예枻’자이니, ‘예枻’는 속자에서 ‘야也’로 쓴다.
군자가 자기 몸을 바로잡는 것은 수준기와 먹줄로 맞추듯이 하고, 남들을 이끌어줄 때는 노로 배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듯이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니, 자신을 단속하는 것은 엄격히 하고 남들을 포용하는 것은 너그럽게 하는 것을 이른다.
《초사楚辭》 〈구가九歌〉의 “계탁혜란설桂擢兮蘭抴(桂木의 노와 난목蘭木의 뱃전으로)”에서 왕일王逸의 주에 “‘탁擢’는 노이다.
‘설抴’는 뱃전의 판목이다.”라고 하고, 단옥재段玉裁의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에 “《모시전毛詩傳》을 살펴보면 ‘즙楫’은 배를 끌어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탁擢’는 이끈다는 뜻이니, 뱃전의 판목을 물속에서 끌어당기기 때문에 이것을 ‘설抴’라 이른다.
속자는 ‘도櫂’로 쓰거나 ‘예枻’로 쓰기도 하니, 이는 모두 옳지 않다.”라고 하였다.
《
회남자淮南子》 〈
설산훈說山訓〉에 “㯳不正而可以正弓(도지개는 형체가 바르지 않지만 뒤틀린 활을 바로잡는다.)”이라고 하였으니, 여기서는 곧 도지개[枻]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注+‘㯳’은 ‘경檠’과 같다.
왕염손王念孫 : 살펴보건대,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 궁인弓人〉의 “항각이달恒角而達 비여종설譬如終紲(활 중앙에 휘어진 부분의 길이가 너무 길면 마치 끈으로 도지개에다가 활을 계속 잡아매두는 것과 같다.)”에서 정씨鄭氏의 주에 “‘설紲’은 활 도지개이다.”라고 하고,
《시경詩經》 〈진풍秦風 소융편小戎篇〉의 “죽폐곤등竹閉緄縢(대나무 도지개를 끈으로 묶었다네.)”에서 《모전毛傳》에 “‘폐閉’는 도지개[紲]이다.”라고 하고,
〈소아小雅 각궁角弓〉의 《모전毛傳》에 “불선설경교용不善紲檠巧用 즉편연이반則翩然而反(도지개를 요령 있게 잘 사용하지 않는다면 활이 훌렁 뒤집어진다.)”이라고 하고, 《의례儀禮》 〈기석旣夕〉의 “궁유비弓有柲(활에는 도지개가 있다.)”에서 정현鄭玄의 주에 “‘비柲’는 활 도지개이다.
활시위가 느슨해지면 그것을 활의 안쪽에 잡아매는 것이니, 활이 손상되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설紲’은 ‘설枻’과 같고 ‘폐閉’는 ‘비柲’, ‘䪐’와 같으니, 곧 《회남자淮南子》의 이른바, 뒤틀린 활을 바로잡는다고 한 그것이다.
‘설枻’은 ‘승繩’과 대구인데, 만약 끌어당긴다는 뜻으로 한다면 ‘승繩’자와 대가 되지 않고, 만약 배의 노라는 뜻으로 한다면 본뜻과 더욱 멀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