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2 湯武之誅桀紂也에 拱挹指麾하되 而彊曓之國莫不趨使하니
注
○王念孫曰 拱挹指麾
는 盧依富國篇
하여 改挹爲揖
이라 案揖與挹通
하니 不煩改字
注+宥坐篇에 挹而損之어늘 淮南道應篇에 挹作揖하고 晏子諫篇에 晏子下車挹之라하니 挹은 卽揖이라라
諸本엔 皆作挹이라 呂本에 挹作揖하여 盧因改爲揖하니 誤라
先謙案 謝本은 從盧校하여 作拱揖하니 今依王說改正이라
상商 탕왕湯王과 주周 무왕武王이 하걸夏桀과 상주商紂를 토벌할 때 공손하게 지휘하였지만 강포한 나라들도 모두 달려와 부림을 받지 않는 일이 없었으니,
注
양경주楊倞注:그 원흉을 토벌하면 그 나머지 사나운 자들은 모두 교화되어 품안으로 들어와 신하로 부릴 수 있다.
○
왕염손王念孫:
공읍지휘拱挹指麾는,
노씨盧氏는 〈
부국편富國篇〉에 따라 ‘
읍挹’을 ‘
읍揖’으로 고쳤다. 살펴보건대,
읍揖과
읍挹은 통용하니, 번거롭게 글자를 고칠 필요가 없다.
注+〈유좌편宥坐篇〉에 “挹而損之(가득한 것을 억제하고 덜어낸다.)”라 하였는데, ≪회남자淮南子≫ 〈道應篇〉에 ‘읍挹’이 ‘읍揖’으로 되어 있고, ≪안자춘추晏子春秋≫ 〈諫篇〉에 “晏子下車挹之(안자晏子가 수레에서 내려 읍을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읍挹’은 곧 ‘읍揖’이다.
여러 판본에는 모두 ‘읍挹’으로 되어 있다. 여본呂本에 ‘읍挹’이 ‘읍揖’으로 되어 있으므로 노씨盧氏가 그에 따라 ‘읍揖’으로 고쳤으니, 잘못되었다.
선겸안先謙案:사본謝本은 노교본盧校本에 따라 ‘공읍拱揖’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왕씨王氏의 설에 의해 고쳐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