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사물의 한 부분에 가려져 正道를 추구하는 본심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마음을 쓰지 않고 〈방심하면〉 黑白이 〈분명한 물건이〉 앞에 있더라도 눈이 보지 못하고, 雷鼓가 곁에서 〈울리더라도〉 귀가 듣지 못하는데, 하물며 〈마음이 異端에〉 부림을 당한 경우이겠는가.
雷鼓
注
楊倞注:雷鼓는 큰북이니, 울리는 소리가 천둥소리와 같은 것이다. 使는 ‘役’의 뜻이다. 이 말은 正道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으레 귀에 들리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을 논한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이단의 학술에 마음을 쓴다면 어찌 다시 또 正道를 추구하라는 말을 듣겠는가.
○兪樾:아래의 ‘使’자는 곧 ‘蔽’자의 잘못이다. 흑백의 색상과 雷鼓 소리도 오히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른 것에 가려진 경우이겠는가.
이 문구는 윗글 ‘蔽於一曲’을 이어받아 말한 것이고, 아랫글(21-12) “欲爲蔽惡爲蔽(좋아하는 것에 가려지고 미워하는 것에 가려진다.)” 등 여러 문구는 또 이 글을 이어받아 그 뜻을 유감없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 편을 ‘解蔽’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아랫구는〉 ‘心不使焉’ 구와 연관되어 ‘使’로 잘못된 것이다. 이미 ‘心不使焉’이라 하였는데, 또 ‘況於使者乎’라고 하면 글 뜻이 통해질 수 없다. 그런데 楊氏는 왜곡되게 그와 같이 말했으니,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