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45 以可以知人之性으로 求可以知物之理하되 而無所疑止之면 則沒世窮年不能徧也라
注
疑止는 謂有所不爲라 窮年은 盡其年壽라 疑는 或爲凝이라
○郝懿行曰 疑止는 說已見王制篇이라 荀書에 多作凝止하니
皆俗人妄改之요 惟此未改라 楊注에 疑는 或爲凝이라하니 蓋俗誤久矣라
兪樾曰 詩桑柔篇靡所止疑에 傳曰 疑는 定也라하니라 疑訓定이라 故與止同義라
此云疑止는 猶詩云止疑라 荀子傳詩라 故用詩義耳라 楊注에 疑는 或爲凝이라하니 非是라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는 본능으로 사물의 이치를 알 수 있는 규율을 탐구하되 안정되어 머무를 곳이 없다면 평생 늙어 죽도록 〈사물의 이치를〉 두루 다 〈알 수〉 없다.
注
楊倞注:疑止는 행하지 않는 일이 있는 것을 이른다. 窮年은 자기 수명을 다한다는 뜻이다. 疑는 간혹 ‘凝’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 郝懿行:疑止는 이에 관한 설명이 이미 〈王制篇〉(9-21)에 보인다. ≪荀子≫에 ‘凝止’로 되어 있는 곳이 많으니,
그것은 모두 세속 사람이 함부로 고친 것이고 이곳만 고치지 못했다. 楊氏의 주에 “疑는 간혹 ‘凝’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라고 하였으니, 아마도 세속의 판본이 잘못된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兪樾:≪詩經≫ 〈大雅 桑柔〉편 “靡所止疑(머물러 안정 취할 곳이 없으니)”의 〈毛傳〉에 “疑는 ‘定’의 뜻이다.”라 하였다. 疑는 ‘定’의 뜻이라 하였으므로 ‘止’와 같은 뜻이다.
이곳에 ‘疑止’라 한 것은 ≪詩經≫에서 ‘止疑’라 한 것과 같다. 荀子는 ≪詩經≫을 후세에 전수한 사람이기 때문에 ≪詩經≫의 그 뜻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楊氏의 주에 “疑는 간혹 ‘凝’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라 하였으니,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