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王念孫曰 仲尼之門人
의 人字
는 後人所加也
注+下文同이라라 下文兩言曷足稱乎大君子之門
도 皆與此門字相應
하니 則無人字明矣
라
春秋繁露對膠西王篇
의 仲尼之門
에 五尺之童子
도 言羞稱五伯
는 爲其詐以成功
하여 苟爲而已也
라 故不足稱於大君子之門
注+漢書董仲舒傳同이라과
風俗通義窮通篇의 孫卿小五伯하여 以爲仲尼之門에 羞稱其功은 語皆本於荀子而亦無人字라
본문 첫머리의 두 글자를 따서 편명으로 붙였다. 통일천하를 성취하는 위업에 관해 중점적으로 천명하였으며, 아울러 왕도王道를 존중하자는 것과 총애를 받는 지위를 공고히 하고 몸을 보전하는 방법, 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방법 등 세 가지를 설명하였다.
중니仲尼(
공자孔子)의 문하에
오척五尺의 동자조차도 말을 할 적에
오패五伯를 거론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으니,
注
○
왕염손王念孫:‘
중니지문인仲尼之門人’의 ‘
인人’자는 후세 사람이 추가한 것이다.
注+아래 글도 같다. 아래 글 두 군데에서 “
갈족칭호대군자지문曷足稱乎大君子之門(어찌 위대한 군자의 문하에서 거론하잘 것이 있겠는가.)”이라고 말한 것도 모두 여기의 ‘
문門’자와 서로 응하니, ‘
인人’자가 없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
춘추번로春秋繁露≫ 〈
대교서왕편對膠西王篇〉의 “
중니지문 오척지동자 언수칭오패 위기사이성공 구위이이야 고부족칭어대군자지문仲尼之門 五尺之童子 言羞稱五伯 爲其詐以成功 苟爲而已也 故不足稱於大君子之門(
중니仲尼의 문하에
오척五尺의 동자도 말을 할 적에
오패五伯를 거론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것은 그들이 술수로 공을 이루어 구차스럽게 정치를 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군자의 문하에서는 거론하잘 것이 못 되는 것이다.)”이라고 한 것과,
注+≪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도 같다.
≪풍속통의風俗通義≫ 〈궁통편窮通篇〉의 “손경소오패 이위중니지문 수칭기공孫卿小五伯 以爲仲尼之門 羞稱其功(손경孫卿이 오패五伯를 하찮게 보아 중니仲尼의 문하에서는 그 공을 거론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이라고 한 것은 그 말이 모두 ≪순자荀子≫에 근본을 두었으나 역시 ‘인人’자가 없다.
≪문선文選≫ 〈진정사표陳情事表〉의 주와 〈해조解嘲〉의 주 등 두 곳에서 ≪순자荀子≫를 인용한 부분에도 다 ‘인人’자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