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49 楚人鮫革犀兕以爲甲하여 鞈如金石하고
注
鞈은 堅貌라 以鮫魚皮及犀兕爲甲하여 堅如金石之不可入이라 史記엔 作堅如金石이라 鞈은 古洽反이라
管子曰 制重罪入以兵甲犀脅二戟하고 輕罪入蘭盾鞈革二戟이라하니라 犀兕는 堅如金石之狀也라
○王念孫曰 楊本엔 作鞈如金石하여 與史記不同이라 然鞈訓堅貌는 諸書未有明文이라
說文
에 鞈
은 防扞也
注+今本엔 扞譌作汗하여 據玉篇廣韻改라라하고 注管子小匡篇曰 鞈革
은 重革
이니 當心著之
면 可以禦矢
라하여 皆不訓爲堅貌
라
史記而外韓詩外傳에도 亦作堅如金石이라 文選三月三日曲水詩序注에 引荀子正作堅하고 太平御覽兵部八十七同이라
鈔本北堂書鈔武功部九
에 引作牢如金石
注+陳禹謨本엔 改爲堅이라하니 此是避隋文帝諱
하여 故改堅爲牢
라 然則
所見本正作堅
하여 與楊本異也
라
兪樾曰 史記禮書에 作堅如金石이라 故楊注訓鞈爲堅貌하고 卽引史記爲證이라
然鞈之訓堅貌는 諸書皆無明文하니 殆非也라 說文鞈有二라 其一見革部爲正篆하고 其一見鼓部爲䶀하니 篆之古文이라
䶀은 鼓聲也라 故文選上林賦鏗鎗闛鞈의 李善注曰 鏗鎗은 鍾聲也요 闛鞈은 鼓聲也라하니라
此文鞈如金石은 當以聲言이요 不當以貌言이니 謂扣之而其聲鞈然如金石也라
必以鼓聲相況者는 鼓是革所爲라 上云鮫革犀兕以爲甲하니 則亦革所爲也라
正見其屬辭之密이라 史記엔 作堅하여 自與荀子異하니 不得竝爲一談也라
초楚나라 사람들은 상어가죽이나 물소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어 두드렸을 때 나는 소리가 무쇠나 돌과 같았고
注
양경주楊倞注:협鞈은 단단한 모양이다. 상어가죽과 물소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어 단단하기가 마치 무쇠나 돌처럼 뚫고 들어갈 수 없다. ≪사기史記≫ 〈예서禮書〉에는 ‘견여금석堅如金石’으로 되어 있다. 협鞈은 〈음이〉 고古와 흡洽의 반절이다.
≪관자管子≫에 “법으로 제정하여 중죄를 범한 자는 무기와 갑옷, 물소가죽으로 만든 가슴갑옷, 두 개의 창을 바치고, 가벼운 죄를 범한 자는 병기걸이와 방패, 가슴갑옷의 용도로 쓸 가죽, 두 개의 창을 바치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물소가죽은 단단한 모양이 무쇠나 돌 같다.
○왕염손王念孫:양씨楊氏가 본 판본에는 ‘협여금석鞈如金石’으로 되어 있어 ≪사기史記≫와 같지 않다. 그러나 협鞈의 뜻을 단단한 모양이라고 한 것은 각종 문헌에 명백히 기록한 글이 없다.
≪
설문해자說文解字≫에 “
협鞈은 막아낸다는 뜻이다.”
注+지금 판본에는 ‘扞’이 잘못되어 ‘汗’으로 되어 있으므로 ≪옥편玉篇≫과 ≪廣韻≫을 근거로 고쳤다.라 하고, ≪
관자管子≫ 〈
소광편小匡篇〉의
윤씨尹氏 주에 “
갑혁鞈革은 겹 가죽이니 가슴 부분에 붙이면 화살을 막아낼 수 있다.”라고 하여 모두 그 뜻을 단단한 모양으로 풀이하지는 않았다.
≪사기史記≫ 이외 ≪한시외전韓詩外傳≫에도 ‘견여금석堅如金石’으로 되어 있다. ≪문선文選≫ 〈삼월삼일곡수시서三月三日曲水詩序〉의 주에서 ≪순자荀子≫를 인용한 곳에 올바로 ‘견堅’으로 되어 있고, ≪태평어람太平御覽≫ 〈병부兵部〉 권87에도 그와 같다.
필사본 ≪
북당서초北堂書鈔≫ 〈
무공부武功部〉 권9의 인용한 곳에서는 ‘
뇌여금석牢如金石’으로 되어 있는데,
注+陳禹謨本에는 〈뢰牢가〉 ‘견堅’으로 고쳐져 있다. 이는
수隋 문제文帝의
휘諱를 피하여 일부러 ‘
견堅’을 고쳐 ‘
뢰牢’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씨虞氏가 본 판본은 올바로 ‘
견堅’으로 되어 있어
양씨楊氏가 본 판본과는 달랐던 것이다.
유월兪樾:≪사기史記≫ 〈예서禮書〉에 ‘견여금석堅如金石’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양씨楊氏의 주에 협鞈의 뜻을 단단한 모양이라 하고 곧바로 ≪사기史記≫를 인용하여 증명하였다.
그러나 협鞈의 뜻을 단단한 모양이라고 한 것은 각종 문헌에 모두 명백히 기록한 글이 없으니, 아마도 아닐 것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협鞈’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혁부革部〉에 보이는 것으로 올바른 전자체篆字體이고, 또 하나는 〈고부鼓部〉에 보이는 것으로 ‘답䶀’으로 되어 있으니 전서체篆書體의 옛 글자이다.
䶀은 북소리이다. 그러므로 ≪文選≫ 〈上林賦〉에 “鏗鎗闛鞈(땡그랑 땡그랑, 두둥둥 두둥둥)”이라 한 곳의 李善 주에 “鏗鎗은 종소리이고, 闛鞈은 북소리이다.”라고 하였다.
이곳 글 ‘협여금석鞈如金石’의 〈‘탑鞈’은〉 마땅히 소리로 말하여야 하고 모양으로 말해서는 안 되니, 그 갑옷을 두드렸을 때 나는 두둥둥 소리가 무쇠나 돌과 같았다는 것을 이른다.
반드시 북소리로 비유한 이유는 북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상어가죽이나 물소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었다고 하였으니, 이 또한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이곳에서 말을 구성하는 기법이 정밀하다는 것을 똑바로 볼 수 있다. ≪사기史記≫에는 ‘견堅’으로 되어 있어 기본적으로 ≪순자荀子≫와는 다르니, 이것을 합쳐 동일한 설법으로 만들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