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言廣施德澤
하여 子惠困窮
하여 使家給人足而上不憂貧乏
이니 所謂
이라
○ 盧文弨曰 注末二句는 與富國篇同이라 宋本乃從今論語本이나 當出後人所改라
郝懿行曰 楊注得之
나 而義猶未盡
이라 怨宛皆從夗聲
하니 此同聲假借也
라 音轉而爲菀
하고 又轉而爲藴
하니 此
假借也
라 不知假借之義
라 故謂爲字誤耳
라
考工記云 眡其鑽空
은 欲其惌也
注+① 音於阮反이라라하여늘 鄭司農注
에 惌
은 讀爲
之宛
注+② 音鬱이라이라하니 此即怨宛相借之例也
요
韓詩外傳二에 子路與巫馬期薪於韞丘之下의 韞丘는 即宛丘니 此即苑藴相借之例也라 藴與韞은 音義同이라
大戴記
엔 作
爲匹夫而願富
注+③ 句라하고 貴爲諸侯而無財
하니 義與此別
이라
재물을 천하 사람에게 널리 베풀더라도 〈자기가〉 가난해질 수 있다는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注
양경주楊倞注:덕택을 널리 베풀어 곤궁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여 집집마다 살림이 넉넉하고 사람마다 의식이 풍족함으로써 윗사람이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는다는 말이니, 이른바 “백성과 함께 풍족하다면 군주가 어찌 풍족하지 않겠는가.”라는 뜻이다.
○ 노문초盧文弨:〈양씨楊氏의〉 주 끝 두 구는 〈부국편富國篇〉(10-40 양경楊倞의 주)에 보이는 것과 같다. 〈양씨楊氏 주의 ‘백성여족군숙부족百姓與足君孰不足’은〉 송본宋本에는 곧 지금의 ≪논어論語≫ 본本을 따랐을 것이나 〈이렇게 다른 것은〉 분명히 후세 사람이 고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학의행郝懿行:양씨楊氏의 주가 맞기는 하나 뜻은 여전히 완전치 못하다. 원怨과 울宛은 모두 원夗의 성부聲符에 속하니 이것은 소리가 같아 가차假借한 것이고, 음이 변해 울菀이 되고 또 변해 온藴이 되니 이것은 쌍성雙聲으로 인해 가차한 것이다. 그런데 〈양씨楊氏는〉 가차의 뜻을 몰랐기 때문에 〈그의 주에서〉 글자가 잘못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
주례周禮≫ 〈
고공기考工記〉에 “
시기찬공眡其鑽空 욕기원야欲其惌也注+① 〈원惌의〉 음은 어於와 완阮의 반절이다.(〈가죽에〉 그 뚫린 구멍을 살펴보는 것은 구멍이 촘촘히 이어져 있기를 추구해서이다.)”라 하였는데
정사농鄭司農(
정중鄭眾)의 주에 “
원惌은 ‘
울피북림宛彼北林(울창한 북쪽 숲에 들어간다네.)’의 ‘
울宛’로
注+② 〈울宛의〉 음은 ‘울鬱’이다. 읽어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
원怨’과 ‘
울宛’을 서로 가차하는 사례이고,
≪한시외전韓詩外傳≫ 권2에 “자로여무마기신어온구지하子路與巫馬期薪於韞丘之下(자로子路와 무마기巫馬期가 중앙이 낮은 언덕 밑에서 땔나무를 하였다.)”라고 한 곳의 ‘온구韞丘’는 곧 ‘완구宛丘’니 이것은 곧 ‘원苑’과 ‘온藴’을 서로 가차하는 사례이다. 온藴과 온韞은 음과 뜻이 같다.
≪
대대례기大戴禮記≫에는 ‘
궁위필부이원부躬爲匹夫而願富注+③ 구句가 끊기는 곳이다. 귀위제후이무재貴爲諸侯而無財(곤궁하여
필부匹夫가 되었으나 부유하기를 원하고, 존귀하여 제후가 되었으나 재물이 없다.)’로 되어 있으니, 그 뜻이 이곳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