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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6)

순자집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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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7-70 爲人臣下者 有諫而無訕하고 有亡而無疾하고 有怨而無怒
謗上曰訕이라 去也 與嫉同하니 惡也
謂若 이요 謂若


신하 된 자는 〈군주에 대해〉 충고할 수는 있어도 비방할 수는 없고, 떠날 수는 있어도 미워할 수는 없고, 원망할 수는 있어도 성낼 수는 없다.
양경주楊倞注:윗사람을 비방하는 것을 ‘’이라고 말한다. 은 떠난다는 뜻이다. 은 ‘’과 같으니, 미워한다는 뜻이다.
선공宣公의 아우 숙힐叔肸위후衛侯의 아우 과 같은 경우를 이르고, 경정慶鄭과 같은 경우를 이른다.


역주
역주1 公弟叔肸 : 公은 魯 宣公을 말하고, 叔肸은 宣公의 同母弟이다. 叔肸은 宣公이 嫡母의 아들인 惡과 視를 죽이고 군주가 된 것을 두고 잘못된 행위라고 원망하여 형이 주는 재물을 일체 거절하고 평생 동안 신발을 짜 먹고 살았다. 후세 사람이 그를 평론하기를 “宣公이 弑逆했으므로 그의 녹을 받을 수 없었고 형제의 윤리를 끊는 법이 없으므로 비난하면서도 떠나지 않았다. 정으로 논하면 친족을 친애하는 도리를 밝힐 수 있고 의리로 말하면 충분히 반역을 멈추게 할 만하다.”라고 하였다.(≪春秋穀梁傳≫ 宣公 17년)
역주2 衛侯之弟鱄 : 衛侯는 衛 獻公이고, 鱄은 獻公의 同母弟 子鮮의 이름이다. 齊나라에 도망가 있던 獻公이 아우 子鮮을 본국의 寧喜에게 보내 자기를 복위시켜주면 실권을 맡기겠다고 약속하였다. 이에 寧喜가 殤公과 태자 角을 죽이고 그렇게 하였는데, 獻公이 약속을 어기고 寧喜를 죽여 버렸다. 그러자 子鮮이 죽은 寧喜에게 부끄럽다고 하여 獻公의 만류를 뿌리치고 晉나라로 도망가 살면서 자리에 앉을 때는 衛나라 쪽을 향하지 않았다. 그가 죽자, 獻公이 매우 슬퍼하여 죽을 때까지 그를 위해 상복을 입어줬다고 한다.(≪春秋左氏傳≫ 襄公 26년)
역주3 慶鄭 : 晉 惠公 때의 大夫이다. 周 襄王 7년(B.C.645) 가을에 晉 惠公이 秦나라 군대와 교전하여 세 번을 패배한 뒤에 후퇴하여 慶鄭에게 그 대책을 물었으나 별다른 묘책이 없다고 하였다. 惠公은 그가 무례하다 하여 자기 전차에 동승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또 惠公의 전차를 끄는 駟馬가 잘 훈련되지 않았으므로 慶鄭이 바꿀 것을 권고하였으나 그 말을 듣지 않았다. 9월 14일에 지금의 山西 河津縣 동남쪽인 韓原에서 두 나라가 교전할 때 惠公의 말이 진흙탕에 빠져 전차가 빙빙 돌며 벗어나지 못해 惠公이 慶鄭에게 구해달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화가 나 있던 慶鄭은 “당신이 실패를 자초해놓고 어찌 도주하려고 합니까.”하고, 혼자 가버렸다. 惠公은 결국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春秋左氏傳≫ 僖公 15년)

순자집해(6)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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