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孔安國曰 瑤는 美石이라하니라 言不知以此四寶爲佩라 說文云 琁은 音瓊이라하니라
○盧文弨曰 瑶는 說文本訓美石하니 楊所據乃誤本也라 如孔安國曰美石이어늘 而今本禹貢注에 亦皆誤爲美玉이라
又曰 此章在遺春申君書後라 此書但載其賦하고 而不載其書라 今以楚策之文을 具錄於此하여 以備考焉이라
客說春申君曰 湯以亳
하고 武王以鄗
注+① 吳師道曰 鎬通이라하니 皆不過百里
로되 以有天下
로이다
今孫子는 天下賢人也어늘 君藉之以百里之勢하시니 臣竊以爲不便於君하니이다 何如오하여늘
春申君曰 善
하다하니라 於是使人謝孫子
어늘 孫子去之趙
注+② 鮑彪曰 史言孫子 春申君死而貧困하여 家蘭陵이라하고 不言之趙라 然卿書有與趙孝成王論兵이어늘 而史不言하니 失之라하니 趙以爲上卿
注+③ 後語에 作上客이라이라
客又說春申君曰 昔伊尹去夏入殷하니 殷王而夏亡하며 管仲去魯入齊하니 魯弱而齊強하니이다
夫賢者之所在엔 其君未嘗不尊하고 國未嘗不榮也하니이다 今孫子는 天下賢人也어늘 君何辭之오하니
春申君又曰 善하다하니라 於是使人請孫子於趙하니라 孫子爲書謝曰
癘人憐王
注+④ 韓詩外傳四에 作鄙語曰癘人憐王이라하니 此不恭之語也
니이다
雖然
注+⑤ 吳師道曰 一本此下有古無虛諺四字라이나 不可不審察也
니 此爲劫弒死亡之主言也
니이다
夫人主年少而矜材
하고 無法術以知姦
이면 則大臣主斷
私
하여 以禁誅於己也
니이다
春秋戒之曰
注+⑥ 外傳에 作春秋之志曰이라 楚王子圍聘於鄭
이라가 未出竟
에 聞王病
하여 反問疾
하고 遂以冠纓絞王殺之
하여 因自立也
라
齊崔杼之妻美어늘 莊公通之하니 崔杼帥其君黨而攻莊公이라
莊公請與分國이나 崔杼不許하고 欲自刃於廟나 崔杼不許라
莊公走出하여 踰於外牆에 射中其股하여 遂殺之하고 而立其弟景公이라하니이다
近代所見은 李兌用趙에 餓主父於沙丘하여 百日而殺之하고 淖齒用齊에 擢閔王之筋하여 縣於其廟梁하니 宿夕而死하니이다
夫癘雖癰腫胞疾이나 上比前世에 未至絞纓射股하고 下比近代에 未至擢筋而餓死也하니이다
夫劫弒死亡之主也는 心之憂勞와 形之困苦 必甚於癘矣리이다 由此觀之하면 癘雖憐王可也니이다하니라
因爲賦曰
寶珍隋珠를
不知佩兮하고
褘衣與絲를
不知異兮로다
以瞽爲明하고
以聾爲聰하며
以是爲非하고
以吉爲凶이로다
嗚呼上天
이여曷惟其同
하리오詩曰 上天甚神
하시니 無自瘵也
注+⑦ 外傳所載賦는 與荀書略同이라 라 外傳末引詩는 作上帝甚하니 無自瘵焉이라라하니라
郝懿行曰 琁은 即瓊字라 韓詩外傳四作璇하니 非라
注
양경주楊倞注:≪설문해자說文解字≫에 “선琁은 붉은 옥이다.”라 하고, “요瑤는 아름다운 옥이다.”라 하였다.
공안국孔安國은 “요瑤는 아름다운 돌이다.”라 하였다. 이 네 가지 보물(선琁․옥玉․요瑤․주珠)을 몸에 찰 줄 모른다는 말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선琁은 음이 ‘경瓊’이다.”라 하였다.
○노문초盧文弨:요瑶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본디 ‘미석美石(아름다운 돌)’으로 되어 있으니, 양씨楊氏가 근거로 삼은 것은 잘못된 판본이다. 이것(요瑶)을 공안국孔安國은 ‘미석美石’이라 했지만 지금 판본의 ≪서경書經≫ 〈우공禹貢〉 정현鄭玄의 주에는 또 모두 잘못되어 ‘미옥美玉’으로 된 경우와 같다.
노문초盧文弨:이 장章은 춘신군春申君에게 보낸 편지 뒤에 붙어 있다. 이 ≪순자荀子≫에는 그 부賦만 실리고 그 편지는 실리지 않았다. 지금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 있는 글을 이곳에 모두 기록하여 참고에 대비할 수 있게 한다.
어떤 빈객이
춘신군春申君에게 회유하기를 “
탕왕湯王은
박경亳京을 〈근거지로 삼아 일어나고〉
무왕武王은
호경鄗京을 〈근거지로 삼아 일어났으니, 이 두 지방은 크기가〉
注+吳師道가 “〈鄗는〉 ‘鎬’와 통한다.”라 하였다. 모두 백 리를 넘지 않았는데도 〈두 왕은 다른 사람으로 인해 마침내〉 천하를 점유하였습니다.
지금 손자孫子(순자荀子)는 천하의 현인賢人인데 지금 당신이 땅 백 리 정도의 세력을 그에게 주려고 생각하시니, 저의 생각에는 당신에게 매우 이롭지 못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하니,
춘신군春申君이 “그 말이 맞다.”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을 보내
손자孫子를 사절하였다.
손자孫子가 〈
초楚나라를〉 떠나
조趙나라로 가니,
注+鮑彪가 “≪史記≫에는 孫子(荀子)가 春申君이 죽은 뒤에 빈곤하여 蘭陵에 정착하였다고만 말하고 趙나라로 간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荀子≫에 趙 孝成王과 군대․병법에 관해 논한 내용이 있는데도 ≪史記≫에서는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잘못되었다. 조趙나라 왕이 그를
상경上卿으로 삼았다.
注+≪春秋後語≫에는 〈上卿이〉 ‘上客’으로 되어 있다.
다른 빈객이 또 춘신군春申君에게 회유하기를 “옛날에 이윤伊尹이 하夏를 떠나 은殷으로 들어가니 은탕殷湯은 왕자王者가 되고 하걸夏桀은 멸망하였으며, 관중管仲이 노魯를 떠나 제齊로 들어가니 노魯나라는 쇠약해지고 제齊나라는 강성해졌습니다.
대체로 현인賢人이 있는 곳에는 그 군왕이 존귀해지지 않은 적이 없고 국가가 번영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 손자孫子는 천하의 현인賢人인데 당신은 어찌하여 그를 사절했습니까?”라고 하니,
춘신군春申君이 또 “그 말이 맞다.” 하였다. 그리하여 조趙나라로 사람을 보내 손자孫子를 초청하였다. 이때 손자孫子가 편지를 써 다음과 같이 사절하였다.
“나병환자가 국왕을 불쌍하게 여긴다는 〈말이 있는데,〉
注+≪韓詩外傳≫ 권4에는 〈癘人憐王이〉 ‘鄙語曰癘人憐王’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공손하지 못한 말입니다.
비록 그렇지만 깊이 살펴보지 않을 수 없으니,
注+吳師道가 “어떤 판본에는 이 밑에 ‘古無虛諺(옛날에는 헛된 속담이 없다.)’ 네 자가 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신하에게 압제당하고 살해당한 군주에 대해 하는 말입니다.
대체로 군주가 나이가 어리면서 자기의 재능을 과시하고, 간사한 사람을 식별할 방법과 수단이 없다면, 대신大臣이 정사를 독단하고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여 자기에게 재앙이 될 만한 대상을 제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재능 있고 나이 많은 군주를 살해하고 나이 어리고 허약한 군주를 옹립하며, 적자嫡子를 폐기하고 의롭지 못한 사람을 발탁하는 것입니다.
≪
춘추春秋≫에 사람들을 경계하기를
注+≪韓詩外傳≫에는 ‘春秋之志曰’로 되어 있다. ‘
초楚나라의 왕자
위圍가
정鄭나라를 방문하기 위해 떠났다가 국경을 벗어나기 전에
부왕父王이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돌아와 병세를 묻고 마침내 갓끈으로 왕을 목 졸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제齊나라 최저崔杼의 아내가 아름다웠는데 제齊 장공莊公이 그와 남몰래 정을 통하자, 최저崔杼가 그의 가신家臣을 거느리고 장공莊公을 공격하였다.
장공莊公이 그와 제齊나라를 함께 나누어 갖자고 청했으나 최저崔杼는 들어주지 않았고 〈장공莊公이 또〉 조상의 사당에 가서 자살하겠다고 하였으나 최저崔杼는 그것도 들어주지 않았다.
장공莊公에게 도망할 것을 〈요구하여〉 그가 바깥 담을 넘어갈 때 활로 그의 넓적다리를 쏘아 맞혀 마침내 그를 죽이고, 장공莊公의 아우 경공景公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근대에 본 것으로는 이태李兌가 조趙나라에서 권력을 장악할 적에 사구沙丘에서 주보主父(조趙 무령왕武靈王)를 굶겨 백 일 만에 그를 죽였고, 요치淖齒가 제齊나라에서 권력을 장악할 적에 제齊 민왕閔王의 힘줄을 뽑고서 그를 사당의 들보에 매달아놓으니 하룻밤을 넘기고 죽었습니다.
대체로 나병은 비록 타고난 악질 종기이지만 위로 고대의 〈제왕과〉 견줘볼 때 갓끈으로 목이 졸려 죽거나 넓적다리에 화살이 꽂혀 죽는 일을 당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고, 아래로 근대의 〈제왕과〉 견줘볼 때 힘줄이 뽑혀 죽거나 굶어죽는 정도에는 이르지 않습니다.
대체로 신하에게 압제당하고 살해당하는 군주는 심적인 근심걱정과 신체의 고통이 분명히 나병에 걸린 사람보다 심할 것입니다. 이로 본다면 나병환자가 비록 국왕을 불쌍하게 여기더라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부賦를 지었다.
진귀한 수후隋侯 구슬
몸에 찰 줄 모르고
곤룡포와 거친 실
구분할 줄 모른다네
아름다운 여주閭姝 자사子奢
중매 설 줄 모르고
추녀 모모嫫母 구하고
또 매우 좋아한다네
장님을 눈이 밝다고 여기고
귀머거리를 귀 밝다 여기며
옳은 것을 그르다고 여기고
길한 것을 흉하다 여긴다네
아, 하늘이여
내 어찌 그들과 함께하리오
≪
시경詩經≫에 ‘
상제上帝께서 너무도 신령하시니, 스스로 병들게는 말아야 하네.’라고 하였다.
注+≪韓詩外傳≫에 실린 賦는 ≪荀子≫와 대략 같다. ‘嘉’자는 두 글에 의거하면 모두 ‘喜’로 되어 있다. ≪韓詩外傳≫ 끝에 인용한 ≪詩經≫의 시는 “上帝甚慆 無自瘵焉(上帝께서 너무도 신령하시니, 스스로 병들게는 말아야 하네.)”으로 되어 있다.
학의행郝懿行:선琁은 곧 ‘경瓊’자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 권4에는 ‘선璇’으로 되어 있으니, 이는 틀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