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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1)

순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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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32 行衢道者不至하고 事兩君者不容이니라
爾雅云 四達謂之衢라하고 云 衢 交道四出也라하며 或曰 衢道 兩道也라하니라
不至 不能有所至
下篇有楊朱哭衢塗하고 今秦俗猶以兩爲衢하니 古之遺言歟
○ 郝懿行曰 案楊朱哭衢塗 見王霸篇이라
注云 衢塗 歧路也 秦俗以兩爲衢하고 或曰 四達謂之衢라하여 大意與此注同하여 俱兼二義訓釋이나
實則楊朱見歧路而悲云大道以多歧亡羊之意 不必泥爾雅四達謂之衢也
王念孫曰 爾雅四達謂之衢라하고 又云 二達謂之歧旁이라하니 歧衢一聲之轉으로 則二達亦可謂之衢
故大戴記作行歧塗者不至라하니라
勸學篇下文 言兩君兩視兩聽 王霸篇下文 言榮辱安危存亡之衢 皆謂兩爲衢也
大略篇又云 二者治亂之衢也라하니注+今本脫治字하니 辯見大略이라 則荀子書皆謂兩爲衢
先謙案王說是


두 갈래 길에서 헤매는 자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동시에 두 군주를 섬기는 자는 양쪽에서 모두 용납받지 못한다.
양경주楊倞注 : 《이아爾雅》에 “사방으로 통하는 길을 ‘’라고 한다.” 하고, 손염孫炎은 “는 교차하는 길이 사방으로 난 것이다.” 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갈림길은 두 길이다.”라고 하였다.
부지不至’는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는 뜻이다.
아래의 편에 “양주楊朱가 갈림길에서 통곡하였다.” 하였고 지금 지방의 풍속에도 두 갈래 길을 ‘’라고 하니,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말인 듯하다.
학의행郝懿行 : 살펴보건대, ‘양주楊朱가 갈림길[衢塗]에서 통곡했다.’는 내용은 〈왕패편王霸篇〉에 보이는데,
그곳의 주에 “구도衢塗란 두 갈래 길이니 지방의 풍속에 두 갈래 길을 ‘’라 하고, 어떤 사람은 사방으로 통하는 길을 ‘’라고 말한다.”라고 하여, 큰 뜻은 이곳의 주와 같아 모두 둘이라는 뜻을 겸하여 풀이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양주楊朱가 갈림길을 보고 슬퍼한 것으로 곧 《장자莊子》의 “큰 도로에서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니, 굳이 《이아爾雅》의, 사방으로 통하는 길을 ‘’라고 한다는 말에 구애받을 것은 없다.
왕염손王念孫 : 《이아爾雅》에 “사방으로 통하는 길을 ‘’라 한다.” 하고, 또 “두 갈래 길을 ‘기방歧旁’이라 한다.” 하였는데, ‘’와 ‘’는 동일한 음이 변한 것이므로 두 갈래 길도 ‘’라 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대례기大戴禮記》 〈권학勸學〉에 “갈림길을 걸어가는 자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다.”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권학편勸學篇〉 속에 있는 글에 ‘양군兩君’, ‘양시兩視’, ‘양청兩聽’이라는 문구를 말한 것과, 〈왕패편王霸篇〉 속에 있는 글에 “영광 혹은 치욕, 안정 혹은 위험, 생존 혹은 멸망의 갈림길[衢]이다.”라고 말한 것들은, 모두 두 갈래 길을 ‘’라고 한 것이다.
대략편大略篇〉에 또 “이 두 가지는 나라가 다스려지느냐 혼란해지느냐의 갈림길[衢]이다.”라고 했으니,注+지금 판본에는 ‘’자가 빠졌는데, 이에 관한 논변은 〈대략편大略篇〉에 보인다.순자荀子》 책에서는 모두 두 갈래 길을 ‘’라 하였다.
선겸안先謙案 : 왕씨王氏의 설이 옳다.


역주
역주1 孫炎 : 三國 魏의 樂安 사람으로, 자는 叔然이다. 鄭玄의 문인에게 배웠으며 東州의 大儒로 불렸다. 《爾雅音義》를 편찬했는데 反切法을 이용하여 글자의 음을 나타낸 최초의 문헌이다. 지금은 이미 없어졌다.
역주2 莊子 : ‘大道以多歧亡羊’은 《列子》 〈說符篇〉에 나오는 내용이므로 《列子》의 잘못으로 보인다.

순자집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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