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王念孫曰
曰 此篇言知道者皆當專心壹志
하여 虛靜而淸明
하여 不爲欲蔽
라
故曰 昔者舜之治天下也云云
이라 後人在尙書內解此者姑弗論
하고
今但就荀子言荀子면 其意則曰 舜身行人事而處以專壹하고 且時加以戒懼之心하니 所謂危之也라
惟其危之일새 所以滿側皆獲安榮이니 此人所知也요 舜心見道而養以專壹은 在於幾微하고 其心安榮하니 則他人未知也라
如此解之면 則引道經及明君子二句與前後各節이 皆相通矣라 楊注謂危之當作之危는 非也라
危之者는 懼蔽於欲而慮危也요 之危者는 已蔽於欲而陷危也라
謂榮爲安榮者는 儒效篇曰 爲君子則常安榮矣며 爲小人則常危辱矣라 凡人莫不欲安榮而惡危辱이라하니
據此則荀子常以安榮與危辱相對爲言이라 此篇言處一危之其榮滿側은 若不以本書證之면 則危榮二字難得其解矣라
故解道經當以荀子此說爲正이니 非所論於古文尙書也라하니라 案此說是也라
下文言闢耳目之欲하고 遠蚊䖟之聲은 可謂危矣나 未可謂微也라하니
言人能如舜之危나 不能如舜之微也라 然則所謂危者는 非蔽於欲而陷於危之謂라
〈사욕의 위험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과 정밀하고 오묘한 마음의 징후는 오직 명철한 君子만 알 수 있다.
注
○王念孫:阮元이 말하기를 “이 편은 도를 아는 사람은 모두 마땅히 마음과 뜻을 전일하게 가져 마음속이 텅 비고 평정하여 청명함으로써 사욕에 가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舜이 천하를 다스릴 적에는……’이라 하였다. 후세 사람이 ≪尙書≫ 안에서 이 내용을 풀이한 것에 대해서는 우선 論外로 하고,
지금 이 ≪荀子≫에서 荀子의 의도에 관해서만 말한다면 그것은 ‘舜이 몸소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행하되 전일한 마음을 고수하고 아울러 수시로 사욕의 위험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겸했으니, 이것이 이른바 「危之(〈사욕에 가려질까 두려워〉 그 위험을 염려하다.)」이다.
오직 그 위험을 염려하기 때문에 충분히 모든 것이 安榮(편안함과 영예)함을 얻으니 이는 일반 사람들이 아는 것이고, 舜의 마음이 도를 보고서 전일한 마음으로 수양하는 것은 도덕이 싹트는 징후가 나타나는 그 순간에 있고 그 마음이 安榮하니 이는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한다.’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풀이한다면 인용된 ≪道經≫과 明君子 두 문구와 앞뒤 각 단락이 모두 서로 통할 것이다. 楊氏의 주에 ‘危之는 마땅히 之危로 되어야 한다.’라고 한 것은 틀렸다.
‘危之’는 사욕에 가려질까 두려워 그 위험을 염려한다는 뜻이고, ‘之危’는 이미 사욕에 가려져서 위험에 빠졌다는 뜻이다.
榮을 安榮이라 말한 것은 〈儒效篇〉에 ‘爲君子則常安榮矣 爲小人則常危辱矣 凡人莫不欲安榮而惡危辱(군자가 되면 언제나 편안하고 영예로우며 소인이 되면 언제나 위험하고 치욕스러울 것이다. 대체로 사람이란 편안하고 영예롭기를 바라며 위험하고 치욕스러운 것을 싫어하지 않는 일이 없다.)’이라 하였으니,
이에 따르면 ≪荀子≫에서는 항상 ‘安榮’과 ‘危辱’을 서로 대를 맞춰 말하였다. 이 편에서 말한 ‘處一危之 其榮滿側’은 만약 ≪荀子≫ 속에서 말한 것으로 증명하지 않는다면 ‘危’‧‘榮’ 두 자를 풀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道經≫ 문구의 풀이는 마땅히 ≪荀子≫의 이 설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니, ≪古文尙書≫에서 논한 뜻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이 설이 옳다.
아랫글(21-119)에 “闢耳目之欲 遠蚊䖟之聲 可謂危矣 未可謂微也(귀와 눈의 욕망을 물리치고 모기와 등에의 소리를 멀리하는 것은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정밀하고 오묘한 〈마음의 징후를 살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라 하였으니,
이는 일반 사람은 舜이 〈사욕의 위험을〉 경계하고 두려워한 것처럼 할 수 있으나 舜이 정밀하고 오묘한 〈마음의 징후를 살핀〉 것처럼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른바 위험하다는 것은 마음이 사욕에 가려져 위험에 빠진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