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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1)

순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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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嘉善謝氏校本 : 首謝序 次楊序及新目錄注+今照刊이라 次荀子讐校所據舊本竝參訂名氏注+影鈔大字宋本 元刻纂圖互註本[此乃當時坊間所梓 脫誤差舛不一而足이나 然正以未經校改之 故其本眞翻未盡失하여 書中頗多採用이라] 明虞氏王氏合校刻本, 明世德堂本, 明鍾人傑本[有評點하고 注刪節이라], 江陰趙曦明敬夫, 金壇段玉裁若膺, 海寧吳騫槎客, 吳縣朱奐文游, 江都汪中容夫, 餘姚盧文弨紹弓, 嘉善謝墉金圃輯校[輯諸家之說하고 并附所見하니 上皆增一圓圍하여 以別於楊氏之注 其引用各書不具列이라] 末錢大昕跋 校勘補遺一卷이라
案此書盧謝同校 故郝蘭皋稱謝하고 王懷祖稱盧
但謝序云 援引校讐 悉出抱經이라
參互攷證하여 遂得蕆事라하니 是此書元出於盧하고 參攷刊行 迺由謝氏하니 則稱盧校本者爲是
盧所據大字宋本 爲北宋呂夏卿熙寧中所刊이라
然未見呂刻本하고 僅取朱文游所藏影鈔本相校
故間有爲影鈔訛字所誤者하니 脩身王霸兩篇注可證也
玆刻 仍以盧校爲主
依謝刻하여 於楊注外 增一圓圍하고 全錄校注
加盧文弨曰四字別之注+據謝序錢跋 校注亦有出謝手者 然無可區別이라
其補遺一卷 散入注中이라
盧校不主一本일새 玆亦仿其例하여 擇善而從하니라
虞王合校本 : 明虞九章王震亨校 爲盧據舊本之一이라
其引見書中者 止王霸篇大有天下하고 小有一國注文이라
玆覆檢元書하니 尙有可采하여 爲增入數條
此外正文及注 岐異滋繁하니 當由傳寫致訛어나 或係以意刪節하여 多與盧氏所云俗間本相合이라
旣非所取證일새 不得稱引하니라
: 宋唐仲友與政刊於台州하니 即依呂本重刻이라
首楊序及新目錄이요 末劉向上言及王呂重校銜名注+與今本同이라 熙寧元年國子監劄子官銜 淳熙八年唐序 經籍訪古志二跋 이라
此即困學紀聞所稱今監本 乃唐與政台州所刊熙寧舊本이니 亦未爲善者也
然在今日 爲希見之本일새 玆取以相校하여 得若干條하여 列入注文이라
其與呂本相同 如一卷取藍干越之比 竝不復出하여 以省繁文하고 至其顯然訛誤하여는 雖與呂岐出이라도 亦無所取하니라
棲霞郝氏懿行荀子補注上下卷 : 末坿二書
玆全採入注하니라
高郵王氏念孫 雜志八 校荀子八卷 : 係據盧本하여 加案語
用宋錢佃江西漕司本 龔士卨荀子句解本 明世德堂本參校하고 嗣得元和顧千里澗薲手錄呂錢二本異同하여 復爲補遺一卷하고 敍而行之
坿荀子佚文及顧氏考訂各條於末이라
其中如劉台拱端臨汪中容夫陳奐碩甫諸家之說 蒐討綦詳하고 而盧校郝注之精者 亦附錄焉이라
玆取王氏各條하여 散入注文하고 劉汪陳顧諸說 仍各冠姓氏於首하니라
德淸俞氏樾諸子平議十二之十五 荀子平議四卷 : 全採入注하고 近儒之說 亦坿著之하니라


가선사씨교본嘉善謝氏校本 : 첫머리는 사용謝墉의 서문이고, 다음은 양경楊倞의 〈순자서荀子序〉 및 〈순자신목록荀子新目錄〉이고注+이번에 참조하여 조판하였다., 다음은 〈순자수교소거구본병참정명씨荀子讐校所據舊本竝參訂名氏〉이고注+영초대자송본影鈔大字宋本〉, 〈원각찬도호주본元刻纂圖互註本〉[이 판본은 곧 그 당시 민간에서 판각한 것으로, 글자가 빠지거나 잘못되고 어긋난 것들이 매우 많다. 그러나 교감하여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참모습을 도리어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아 이 책 속에서 채택할 것들이 상당히 많다.], 〈명우씨왕씨합교각본明虞氏王氏合校刻本〉, 〈명세덕당본明世德堂本〉, 〈명종인걸본明鍾人傑本〉[평론과 방점이 있고 주는 요약하였다.], 〈강음조희명경부江陰趙曦明敬夫〉, 〈금단단옥재약응金壇段玉裁若膺〉, 〈해령오건사객海寧吳騫槎客〉, 〈오현주환문유吳縣朱奐文游〉, 〈강도왕중용부江都汪中容夫〉, 〈여요로문초소궁餘姚盧文弨紹弓〉, 〈가선사용금포집교嘉善謝墉金圃輯校〉[여러 학자의 설을 수집하고 아울러 자기의 견해를 붙였는데, 그 위에 모두 하나의 권점을 추가하여 양씨楊氏의 주와 구별하였다. 인용한 각 책은 열거하지 않았다.], 끝에는 전대흔錢大昕이 발문을 쓴 〈교감보유校勘補遺〉 1권으로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이 책은 노문초盧文弨사용謝墉이 함께 교감한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를, 학란고郝蘭皋(郝懿行)는 사용謝墉이라 하고 왕회조王懷祖(王念孫)는 노문초盧文弨라 하였다.
다만, 사용謝墉의 서문에 “근거를 인용하고 교감한 내용들은 모두 포경당抱經堂(盧文弨)의 손에서 나왔다.
이것을 참조하고 고증하여 마침내 작업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라 하였으니, 이로 볼 때 이 책은 본디 노씨盧氏의 손에서 이루어졌고 참조 고증하여 간행한 것은 사씨謝氏를 거쳤으니, 노교본盧校本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
노씨盧氏가 근거로 삼은 대자송본大字宋本북송北宋 여하경呂夏卿희령熙寧 연간에 간행한 판본이다.
그러나 여하경呂夏卿각본刻本은 보지 못하고 겨우 주문유朱文游가 소장한 영초본影鈔本을 가지고 대조 교감하였다.
이 때문에 간혹 영초본影鈔本의 잘못된 글자로 인해 오류가 생긴 경우가 있으니, 〈수신脩身〉과 〈왕패王霸〉 두 편의 주에서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
이 《순자집해荀子集解》는 노교본盧校本을 위주로 하였다.
사각본謝刻本의 형식을 따라 양경楊倞 주 이외의 경우 하나의 권점圈點(○)을 추가하고 〈그 밑에〉 교주校注 내용을 전부 기록하였다.
그리고 ‘노문초왈盧文弨曰’이라는 네 글자를 추가하여 〈다른 사람의 것과〉 구별하였다.注+사용謝墉의 서문과 전대흔錢大昕의 발문에 의하면 교주校注 중에 사용謝墉의 손에서 나온 것도 있으나 구별할 수 없다.
그 〈보유補遺〉 한 권의 내용은 해당되는 속에 삽입하였다.
노교본盧校本이 어떤 한 판본을 위주로 삼지 않았으므로, 이 책에서도 그 사례를 본떠 선본善本을 선택하여 그대로 따랐다.
우왕합교본虞王合校本 : 나라 우구장虞九章왕진형王震亨이 교정한 것으로, 노문초盧文弨가 교감할 때 근거로 삼은 옛 저본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글 속에 인용한 부분은 〈왕패편王霸篇〉의 “권력이 크면 〈천자가 되어〉 천하를 보유하고, 권력이 작으면 〈제후가 되어〉 한 나라를 보유한다.[大有天下 小有一國]”라고 한 곳의 주의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이 원서元書를 다시 점검해보니 그래도 채택할 만한 부분이 있어 몇 개의 조목을 취해 더 넣었다.
이밖에 본문과 주가 서로 일치하지 않은 부분이 매우 많았는데, 이는 분명히 등사하는 과정에서 잘못되었거나 혹은 임의로 축약했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서, 노씨盧氏가 말한 ‘세간의 판본[俗間本]’이라 한 내용과 부합된 곳이 많았다.
이것들은 노씨盧氏가 이미 고증거리로 취하지 않은 것이므로 끌어대지 않았다.
송태주본宋台州本 : 나라 당중우唐仲友 여정與政태주台州에서 간행하였는데, 곧 여하경呂夏卿의 교정본에 의해 재차 판각한 것이다.
준의遵義 여서창黎庶昌 순재蒓齋가 일본에서 모각본을 얻어 중간重刊하여 《고일총서古逸叢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첫머리에는 양경楊倞의 서문과 〈신목록新目錄〉이 있고, 책 말미에는 유향劉向이 〈목록을 교정하고〉 천자에게 올린 글 및 재차 교정에 참여한 왕자소王子韶여하경呂夏卿의 관직명과 注+지금 판본과 같다.熙寧 원년에 국자감國子監에서 차자를 올렸던 관원들의 관직명, 순희淳熙 8년에 쓴 당중우唐仲友의 서문, 《경적방고지經籍訪古志》의 발문 2편, 양수경楊守敬중간重刊 발문이 있다.
이것은 곧 《곤학기문困學紀聞》에 “지금 감본監本은 곧 당여정唐與政태주台州에서 간행한 희령熙寧 구본舊本으로, 이 또한 선본은 아니다.”라고 말한 책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보기 드문 저본이므로 이번에 이것을 취해 교감하여 약간의 조목을 얻어내서 의 내용 속에 끼워 넣었다.
그 내용이 여하경본呂夏卿本과 동일한 것으로서 제1권의 ‘취람取藍’과 ‘간월干越’ 같은 유들은 모두 재차 거론하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한 형식을 줄였으며, 확실하게 잘못된 경우에는 비록 여하경본呂夏卿本과 다르더라도 취하지 않았다.
서하棲霞 학의행郝懿行의 《순자보주荀子補注상하권上下卷 : 말미에 손경孫卿에 관해 논하는 내용으로 왕시랑王侍郞에게 보낸 편지와 양경楊倞에 관해 논하는 내용으로 이비부李比部에게 보낸 편지 두 편이 첨부되어 있다.
이번에 모두 채집하여 속에 넣었다.
고우高郵 왕염손王念孫의 《독서잡지讀書雜志》 권8의 《교순자校荀子》 8 : 노씨본盧氏本에 의거하되 〈자기의 견해일 경우에는〉 ‘’이란 말을 추가하였다.
나라 전전錢佃강서조사본江西漕司本공사설龔士卨의 《순자구해荀子句解》本, 나라 세덕당본世德堂本을 가지고 참고하여 교정하고, 또 이어서 원화元和 지방의 고천리顧千里 간빈澗薲여하경呂夏卿전전錢佃 두 판본의 서로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직접 기록한 자료를 얻어 다시 《보유補遺》 한 권을 만들고 서문을 붙여 간행하였다.
순자荀子》의 빠진 글과 고씨顧氏가 고증하여 교정한 여러 조목을 말미에 첨부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유태공劉台拱 단림端臨, 왕중汪中 용부容夫, 진환陳奐 석보碩甫 등 여러 학자의 설에 관해 수집하고 연구하기를 매우 치밀하게 하였고, 노씨盧氏의 교감과 학씨郝氏주해注解 가운데 정밀한 것들도 덧붙여 수록하였다.
이번에 왕씨王氏의 각 조목을 취해 해당되는 주의 내용 속에 삽입하였으며 유태공劉台拱, 왕중汪中, 진환陳奐, 고천리顧千里의 여러 설은 있는 그대로 수용하되 각자의 설 첫머리에 그 성씨를 배치하였다.
덕청德淸 지방 유월俞樾의 《제자평의諸子平議》 권12부터 권15까지의 《순자평의荀子平議》 4 : 모두 채집하여 의 내용 속에 삽입하고 근대 유자儒者의 설도 첨부하였다.


역주
역주1 宋台州本 : 南宋 孝宗 淳熙 8년(1181)에 朝請郞 權發遣台州軍州事 唐仲友가 北宋의 呂夏卿(1018~1070)이 熙寧監本을 재차 교정하여 간행한 판본을 번각한 것이다. 글자는 歐陽詢의 서체를 본떠 힘이 있고 크기는 동전만큼 커서 大字宋本으로도 불린다. 熙寧監本은 《荀子》의 최초 刊本으로, 神宗 원년인 1068년 9월에 集賢殿太學士 曾公亮이 總裁가 되어 校勘官 15명과 함께 교정하여 國子監에서 간행한 것이다.
역주2 遵義黎庶昌蒓齋……重刊爲古逸叢書之一 : 遵義는 중국 貴州에 딸린 고을 이름으로, 黎庶昌(1873~1891)의 출신지이고 蒓齋는 그의 호이다. 德宗 10년인 1884년에 日本公使로 나가 있으면서 중국에는 이미 없어진 宋나라와 元나라 때의 귀중본을 찾아내 복각하여 《古逸叢書》를 만들었는데, 이 속에 일본 학자 士島重禮가 소장하고 있던 《荀子》의 台州本도 들어 있다.
역주3 重刊楊跋 : 楊은 黎庶昌의 부하 楊守敬을 말한다. 黎庶昌이 찾아낸 台州本을 중간할 때 그가 두세 번 교정하는 작업을 수행하였고 그 발문을 썼다.
역주4 與王侍郞論孫卿 與李比部論楊倞 : 모두 郝懿行(1755~1824)이 쓴 편지이다. 與王侍郞論孫卿은 〈與王伯申引之侍郞論孫卿書〉의 약칭으로 道光 4년(1824) 2월에 썼고, 與李比部論楊倞은 〈與李月汀璋煜比部論楊倞書〉의 약칭으로 같은 해 윤7월 24일에 쓴 것이다.

순자집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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