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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6)

순자집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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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7-92 春秋賢穆公 以爲能變也
公羊傳曰 하다 秦無大夫어늘 此何以書 賢穆公也 何賢乎穆公 以爲能變也라하니라
謂前不用蹇叔百里之言하여 敗於殽函이라가 而自變悔하여하고 詢玆黃髮是也


춘추春秋≫에서 목공穆公을 현명한 군주로 여긴 것은 그가 능히 변화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양경주楊倞注:≪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진백秦伯를 파견하여 〈나라를〉 방문하였다. 는 누구인가? 나라 대부大夫이다. 나라에는 대부大夫가 없는데 여기에 무엇 때문에 〈대부大夫로〉 기록했는가? 목공穆公을 현명한 군주로 여겼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목공穆公을 현명한 군주로 여겼는가? 능히 변화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목공穆公이〉 전에 건숙蹇叔백리해百里奚의 말을 듣지 않아 효산崤山함곡관函谷關에서 패배하였다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변화하여 〈진서秦誓〉를 짓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본 것을 이른다.


역주
역주1 秦伯使遂來聘 : ≪春秋≫ 文公 12년(B.C.615)의 經文이다. 秦伯이 遂를 파견하여 魯나라를 방문하였다는 뜻이다. 秦伯은 秦 穆公이고, 遂는 秦 穆公의 신하 西乞術로 上大夫 蹇叔의 아들이다. B.C.627년에 秦 穆公이 蹇叔과 百里奚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孟明視․西乞術․白乙丙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鄭나라를 공격하게 하였으며 다음해에는 晉나라의 습격을 받아 崤山과 函谷關에서 패배하였다. 그 뒤에 잘못을 뉘우치고 생각을 바꿔 국정을 원로대신들과 상의하여 처리하고 세력을 확장함으로써 서부의 제후국을 통솔하는 霸者가 되었다.(≪春秋左氏傳≫ 僖公 33년, 文公 12년)
역주2 遂者何 秦大夫也 : ≪春秋≫의 經文에서 제후국끼리 사신을 보내 방문하는 사실을 기록할 때 그 사신의 신분이 大夫임을 인정하는 경우에만 ‘來聘’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 經文이 ‘來聘’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遂는 秦나라 大夫라는 것이다. 이전에는 秦나라가 사신을 보내 오더라도 ‘來聘’이라 쓰지 않았으므로 아랫구에 “秦無大夫(秦나라에는 大夫가 없다.)”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3 秦誓 : ≪尙書≫의 篇名으로, ≪今文尙書≫ 28편 가운데 하나이다. 秦나라 군대가 崤山과 函谷關에서 晉나라에 패배한 뒤에 秦 穆公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복수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순자집해(6)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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