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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1)

순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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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夫此順하여
人所以順命如此者 由愼其獨所致也
愼其獨 謂戒愼乎其所不睹하고 恐懼乎其所不聞이니 至誠不欺 故人亦不違之也
○ 郝懿行曰 此語甚精이어늘 楊氏不得其解하여 而以謹愼其獨爲訓이라
今正之云
獨者 人之所不見也 愼者 誠也 誠者 實也
心不篤實하면 則所謂獨者不可見이라
勸學篇云 無冥冥之志者 無昭昭之明하고 無惛惛之事者 無赫赫之功이라하니 此惟精專沈黙하여 心如 而後髣髴遇焉이라
口不能言하고 人亦不能傳이라 故曰獨也니라
又曰 不獨則不形者 形非形於外也注+楊注誤
形即形此獨也니라
又曰 不形則雖作於心 見於色 出於言三句 皆由獨中推出하니 此方是見於外之事
而其上說天地四時云 夫此有常하여 以至其誠者也라하고 說君子至德云 夫此順命하여 以愼其獨者也라하니 順命 謂順天地四時之命이라注+楊注尤誤
言化工黙運하여 自然而極其誠하고 君子感人하여 嘿然而人自喩하니 惟此順命以愼其獨而已
推尋上下文義컨대 當訓誠이라
據釋詁云 愼 誠也라하니 非愼訓謹之謂
中庸愼獨 與此義別이라
楊注不援爾雅而據中庸하니 謬矣
愼字古義訓誠이라
詩凡四見하니 毛鄭俱依爾雅爲釋이라
大學兩言愼獨하고 皆在誠意篇中하니 其義亦與詩同이라
惟中庸以戒愼愼獨爲言 此別義 乃今義也
荀書多古義古音이어늘 楊注未了하여 往往釋以今義하고 讀以今音하여 每致舛誤하니 此其一也
餘不悉舉
王念孫曰 中庸之愼獨 愼字亦當訓爲誠이니 非上文戒愼之謂注+ 即大學之十目所視 十手所指 則愼獨不當有二義 云 中庸言愼獨 即是誠身이라
故禮器說禮之以少爲貴者曰 是故君子愼其獨也 鄭注云 少其牲物하여 致誠慤이라하니 是愼其獨即誠其獨也
愼獨之爲誠獨 鄭於禮器已釋訖이라 故中庸大學注皆不復釋하니라 未達此旨 故訓爲謹愼耳
凡經典中愼字 與謹同義者多하고 與誠同義者少하고 訓謹訓誠 原無古今之異注+愼之爲謹 不煩訓釋이라 故傳注無文이요 非誠爲古義而謹爲今義也
唯愼獨之愼 則當訓爲誠이라 故曰 君子必愼其獨이라하고 又曰 君子必誠其意라하니 禮器中庸大學荀子之愼獨 其義一而已矣니라


이것은 그가 천명天命에 순응하여 그 혼자만 아는 마음을 성실하게 가졌기 때문이다.
양경주楊倞注 : 사람이 에 순응하기를 이처럼 하는 이유는 그 홀로 있을 때에도 신중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 홀로 있을 때에 신중히 한다는 것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조심하며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하는 것을 말하니, 지극한 은 속이지 않기 때문에 남들도 그를 어기지 않는 것이다.
학의행郝懿行 : 이 말은 매우 정밀한데도 양씨楊氏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홀로 있을 때를 신중히 한다.[謹愼其獨]’로 풀이하였다.
여기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바로잡는다.
’이란 남이 보지 못한 곳이고, ‘’이란 ‘’자 뜻이며 ‘’이란 ‘(성실)’자 뜻이다.
마음이 독실하지 않으면 이른바 혼자만 아는 마음인 ‘’이란 것을 스스로 볼 수 없다.
권학편勸學篇〉에 “마음을 가라앉혀 깊이 연구하는 뜻이 없는 자는 빛나는 명예가 없고, 남모르는 가운데 행하는 일이 없는 자는 혁혁한 공이 없다.[無冥冥之志者 無昭昭之明 無惛惛之事者 無赫赫之功]”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오직 마음을 섬세하고 전일하며 깊이 가라앉혀 마른 나무둥치나 불 꺼진 재처럼 된 뒤에 비로소 어렴풋하게나마 자기 마음의 내면을 만나볼 수 있다.
자기 입으로 형용할 수도 없고 남도 뭐라고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라 말한 것이다.
학의행郝懿行 : ‘부독즉불형不獨則不形(혼자만 아는 마음이 성실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다.)’이라고 한 곳의 ‘’은 그 덕이 밖으로 드러난다는 뜻이 아니다.注+양씨楊氏의 주는 잘못되었다.
’은 곧 혼자만 아는 마음이 성실하여 〈인의仁義를 지키고 행하는 것이〉 밖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학의행郝懿行 : ‘불형즉수작어심不形則雖作於心 견어색見於色 출어언出於言(〈仁義를 지키고 행하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비록 마음에 일어나고 얼굴빛에 보이고 말로 내뱉더라도)’이라는 세 문구는 모두 ‘’으로부터 확대되어 나온 것이니, 이것이 비로소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위에 천지와 사계절을 말하면서 ‘이것은 그것들이 일정한 규칙이 있어 그 의 정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夫此有常 以至其誠者也]’라 하고, 군자의 지대한 덕을 말하면서 ‘이것은 천명天命에 순응하여 그 혼자만 아는 마음을 성실하게 가졌기 때문이다.[夫此順命 以愼其獨者也]’라 하였으니, ‘순명順命’은 〈천지와 사계절이〉 운행하는 이치를 말한다.注+양씨楊氏의 주는 더욱 잘못되었다.
이것은 조물주가 말없는 가운데 천지와 사계절을 운행함으로써 자연적으로 그 을 극진히 하고, 군자는 사람들을 감화시킴으로써 잠자코 있더라도 사람들이 스스로 그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을 말한 것이니, 오직 이것은 천명天命에 순응하여 그 혼자만 아는 마음을 성실하게 가졌기 때문일 뿐이다.
위아래 문구의 뜻을 추리해보건대, ‘’은 마땅히 ‘’자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
이아爾雅》 〈석고釋詁〉에 ‘’은 ‘’자 뜻이라고 하였으니, ‘’을 ‘’자 뜻으로 본다는 말이 아니다.
중용中庸》의 ‘신독愼獨’은 이곳과 뜻이 다르다.
양씨楊氏는 《이아爾雅》를 인용하지 않고 《중용中庸》을 근거로 삼았으니, 잘못되었다.
’자를 옛 뜻에는 ‘’으로 풀이하였다.
시경詩經》에 모두 네 번 보이는데, 모형毛亨정현鄭玄은 모두 《이아爾雅》를 인용해 풀이하였다.
대학大學》에 두 군데에서 ‘신독愼獨’을 말했고 모두 〈성의편誠意篇〉 속에 있는데, 그 뜻이 《시경詩經》과 같다.
오직 《중용中庸》에서 ‘계신戒愼’과 ‘신독愼獨’으로 말한 이것만 다른 뜻으로, 곧 지금의 뜻이다.
순자荀子》에는 옛 뜻과 옛 음이 많은데 양씨楊氏의 주는 이 사실을 모르고서 이따금 지금의 뜻으로 풀이하고 지금의 음으로 읽음으로써 매번 오류를 초래하였으니, 여기의 경우가 그중 하나이다.
나머지 〈유사한 사례는〉 이루 다 거론할 수 없다.
왕염손王念孫 : 《중용中庸》에서 ‘신독愼獨’이라 한 ‘’자 또한 마땅히 ‘’자 뜻으로 보아야 하니 윗글의 ‘계신戒愼’을 말한 것이 아니다.注+“어두운 곳만큼 환히 보이는 것이 없으며, 작은 일만큼 환히 나타나는 것이 없다.[莫見乎隱 莫顯乎微]”라고 한 말은, 곧 《대학大學》의 “열 눈이 보는 바이며 열 손이 가리키는 바이다.[十目所視 十手所指]”와 같은 뜻이니, ‘신독愼獨’에 두 뜻이 있는 것은 옳지 않다. 진석보陳碩甫가 “《중용中庸》에서 말한 ‘신독愼獨’은 곧 자기 몸을 성실하게 한다는 ‘성신誠身’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기禮記》 〈예기禮器〉의 ‘예는 적은 것을 귀하게 여긴다.[禮之以少爲貴]’를 설명한 곳에서 “이 때문에 군자는 그 혼자만 아는 마음을 성실하게 갖는다.[是故君子愼其獨也]”라고 하였고, 이곳의 정씨鄭氏에 “그 제사에 올리는 제물을 적게 올려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少其牲物 致誠慤]”라고 하였으니, 이 ‘신기독愼其獨’은 ‘성기독誠其獨’인 것이다.
신독愼獨’이 ‘성독誠獨’이라는 것은 정현鄭玄이 〈예기禮器〉에서 이미 풀이하였으므로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의 주에 모두 다시 풀이하지 않았는데, 공충원孔沖遠이 이 취지를 몰랐기 때문에 ‘근신謹愼’으로 풀이했던 것일 뿐이다.
모든 경전經典 속에 있는 ‘’자는 ‘’자와 뜻이 같은 경우가 많고 ‘’자와 뜻이 같은 경우는 적으며, ‘’자 뜻과 ‘’자 뜻을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것은 본디 고금의 차이가 없다.注+’이 ‘’의 뜻일 경우에는 그 뜻을 번거롭게 풀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나 에 그에 관한 글이 없는 것이지, ‘’은 옛 뜻이고 ‘’은 지금의 뜻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직 ‘신독愼獨’의 ‘’만은 마땅히 ‘’자의 뜻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군자는 반드시 그 혼자만 아는 마음을 성실하게 갖는다.[君子必愼其獨]”라고 하고, 또 “군자는 반드시 그 마음을 성실하게 갖는다.[君子必誠其意]”라고 하였으니, 〈예기禮器〉‧《중용中庸》‧《대학大學》‧《순자荀子》의 ‘신독愼獨’은 그 뜻이 동일할 뿐이다.


역주
역주1 : 天命, 곧 天道로 천지 사계절의 운행인 자연의 규율을 말한다.
역주2 以愼其獨者也 : ‘愼’은 郝懿行이 《爾雅》 〈釋詁〉의 “‘愼’은 ‘誠’자의 뜻이다.[愼 誠也]”라 한 것을 근거로 들어 楊倞이 《中庸》의 ‘愼獨’의 뜻으로 풀이한 것에 대해 반박하였는데, 이에 대해 王先謙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王念孫과 王天海 등이 동의하였다. ‘愼其獨’에 대해 俞樾‧熊公哲‧王天海 등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문구는 앞서의 ‘정성을 극진히 하는 것에는 다른 일이 따로 없고 오직 仁을 지키고 오직 義를 행하는 것일 뿐이다.[致誠則無它事矣 唯仁之爲守 唯義之爲行]’를 가리킨 것이라고 하면서 ‘獨’은 한 가지 일, 곧 ‘仁을 지키고 義를 행하는 것’를 말한다고 하였다. 위의 설들을 종합하면 “仁義를 지키고 행하는 한 가지 일을 성실하게 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俞樾 등의 설이 매우 일리가 있다. 다만 ‘獨’자의 ‘남은 보지 못하고 자기 혼자만 의식하는 마음상태’라는 기본적인 의미와 다르게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데다 혼자만 의식하는 그 마음에 이미 仁義를 지키고 행해야 한다는 의식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굳이 그처럼 직설적으로 번역하지 않았다. 楊倞의 주에 대해서는 그의 견해에 따라 번역하였다.
역주3 槁木死灰 : 《莊子》 〈齊物論〉의 “형체가 정말 마른 나뭇등걸처럼 되게 할 수 있고, 마음이 정말 불 꺼진 재처럼 되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데서 나온 것으로, 세상사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인용된다.
역주4 孔沖遠 : 沖遠은 唐나라 孔穎達(574~648)의 자이다. 후세에 그의 자가 仲達로 바뀌었는데, 이는 沖이 仲으로, 遠이 達로 잘못 표기되었고 이것이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經學에 정통하여 顔師古 등과 함께 《五經正義》를 편찬하였다.
역주5 莫見乎隱 莫顯乎微 : 《中庸》 제1장에 보인다.
역주6 陳碩甫 : 碩甫는 淸나라 陳奐(1786~1863)의 자이다. 江蘇 長洲 사람으로 호는 師竹이고 만년에 南園老人이라 자호하였다. 江沅과 段玉裁에게 수학하고 王念孫 父子와 학문을 강론하여 經學에 정통하였다. 그가 편찬한 《詩毛氏傳疏》는 淸代 《詩經》학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순자집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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