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6 故能處道而不貳
하며 하며 利而不流
하며 貴公正而賤鄙爭
이라 是士君子之辨說也
니라
注
○兪樾曰 楊說非也라 吐는 當爲咄이니 形似而誤라 從土從出之字는 隸書에 每相亂하니
若𢾕從出而今譌爲敖하고 𧷓從出而今譌爲賣 是也라 咄者는 詘之叚字라
從口從言之字는 古或相通하니 若詠之爲咏하고 諎之爲唶하고 吟之爲訡하고 嘖之爲謮이 是也라
詘而不奪과 利而不流 二句相對하니 言雖困詘而不可劫奪하고 雖通利而不至流蕩也라
上文於聖人之辨說에 曰 說行則天下正하고 說不行則白道而冥躬이라하고
此於士君子之辨說에 曰 詘而不奪하고 利而不流라하니라 詘은 謂說不行하고 利는 謂說行하여 其文正相配也라
그러므로 도리를 견지하여 딴마음을 품지 않으며, 말을 거침없이 토하더라도 실수하지 않으며, 말주변이 좋더라도 제멋대로 말하지 않으며, 공정함을 귀하게 여기고 너절한 논쟁을 천하게 여겨야 한다. 이것이 士君子의 변론과 해설이다.
注
楊倞注:‘吐而不奪’은 논변을 토해내더라도 사람들이 〈그 기세를〉 빼앗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利’는 간혹 ‘和’로 되어 있기도 하다.
○兪樾:楊氏의 설은 틀렸다. ‘吐’는 마땅히 ‘咄’이 되어야 하니, 모양이 비슷하여 잘못된 것이다. 土가 形符가 되고 出이 形符가 된 글자는 隸書에 번번이 서로 뒤섞이니,
𢾕는 出이 形符가 되는데 지금 잘못되어 ‘敖’가 되고, 𧷓는 出이 形符가 되는데 지금 잘못되어 ‘賣’가 된 경우와 같은 것이 이것이다. 咄이란 ‘詘’의 假借字이다.
口가 形符가 되고 言이 形符가 되는 글자는 옛날에 간혹 서로 통용하였으니, ‘詠’이 ‘咏’이 되고 ‘諎’이 ‘唶’이 되고 ‘吟’이 ‘訡’이 되고 ‘嘖’이 ‘謮’이 된 경우와 같은 것이 이것이다.
‘詘而不奪’과 ‘利而不流’ 두 구가 서로 짝을 이룬 것이니, 비록 곤경에 처했더라도 그 의지를 강압적으로 빼앗을 수 없고, 비록 〈막히지 않고〉 순조롭더라도 방탕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윗글(22-89)에서 聖人의 논변과 해설에 대해서는 “자기 이론이 행해지면 천하가 바로잡히고, 자기 이론이 행해지지 못한다면 도리만 밝히고 자기 자신은 숨는 것이다.”라 하고,
여기서 士君子의 논변과 해설에 대해서는 “詘而不奪 利而不流(곤경에 처했더라도 〈그 의지를 강압적으로〉 빼앗을 수 없고 〈막히지 않고〉 순조롭더라도 방탕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詘은 이론이 행해지지 않는 것을 말하고, 利는 이론이 행해지는 것을 말하여 그 글이 정확이 서로 짝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