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性之和所生하여 精合感應하되 不事而自然을 謂之性이라
注
和는 陰陽沖和氣也라 事는 任使也라 言人之性은 和氣所生으로 精合感應하되 不使而自然하니 言其天性如此也라
精合은 謂若耳目之精靈이 與見聞之物合也라 感應은 謂外物感心而來應也라
○先謙案 性之和所生은 當作生之和所生이라 此生字는 與上生之同하니 亦謂人生也라
兩謂之性相儷하니 生之所以然者를 謂之性하고 生之不事而自然者를 謂之性이라하면 文義甚明이나
若云 性之不事而自然者를 謂之性이라하면 則不詞矣라 此傳寫者緣下文性之而誤라
천성의 온화한 기운을 받아 사람으로 태어나 그 정신이 외물과 접촉하여 감응하되 인위적인 노력을 거치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을 본성이라 이른다.
注
楊倞注:和는 陰陽의 온화한 기운이다. 事는 책임을 맡겨 부린다는 뜻이다. 사람의 본성은 온화한 기운에 의해 생긴 것으로 정신이 외물과 접촉하여 감응하되 인위적인 노력을 거치지 않고 저절로 이루진 것을 말하니, 그 천성이 이와 같다는 말이다.
精合은 귀와 눈의 정기가 보이고 들리는 사물과 접촉하는 것과 같은 것을 이른다. 感應은 외물이 마음에 느껴져 들어와서 서로 호응하는 것을 이른다.
○先謙案:‘性之和所生’은 마땅히 ‘生之和所生’으로 되어야 한다. 이 ‘生’자는 위의 ‘生之’와 같으니, 이것도 사람이 태어난 것을 이른다.
두 ‘謂之性’은 서로 짝을 이룬 것이니, ‘生之所以然者 謂之性 生之不事而自然者 謂之性(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본성이라 하고, 태어날 때부터 인위적인 노력을 거치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을 본성이라 한다.)’이라 하면 글 뜻이 매우 분명하지만,
만약 ‘性之不事而自然者 謂之性(性이 인위적인 노력을 거치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을 본성이라 한다.)’이라 하면 말이 안 된다. 이것은 서로 전하여 베끼는 사람이 아랫글(22-8) ‘性之’로 인해 잘못을 범한 것이다.
〈楊倞의〉 주 ‘人之性’의 ‘性’은 마땅히 ‘生’으로 되어야 하니, 이 또한 후세 사람이 자의적으로 고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