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0 故曰 心枝則無知
하고 傾則不精
하고 貳則疑惑
이라 以
稽之
면 萬物可兼知也
라
注
枝는 旁引如樹枝也라 贊은 助也요 稽는 考也라 以一而不貳之道助考之면 則可兼知萬物이나 若博襍하면 則愈不知也라
○郝懿行曰 案枝는 與岐同하니 古字通用이라 岐者는 不一也라 此申上文貳之之意라
郭嵩燾曰 荀意言心不貳而推類면 可以知萬物이라 至以身盡道하여는 惟無貳而已니 類不可以兩求也라 楊注失之라
先謙案 王氏念孫云 貳는 是貣之誤字라하니라 說見天論篇이라
今案此貳字는 與上下文緊相承하니 注不當作貣이라 王說非也라
그러므로 “마음이 분산되면 아는 것이 있을 수 없고 마음이 기울어지면 정밀해질 수 없고 마음이 둘로 갈리면 의혹이 생길 수 있다.”라고 하였다. 도에 마음을 전일하게 가져 이것으로 사물을 참고하고 고찰한다면 만물의 이치를 모두 알 수가 있다.
注
楊倞注:枝는 곁으로 뻗은 것이 나뭇가지와 같다는 뜻이다. 贊은 돕는다는 뜻이고, 稽는 살핀다는 뜻이다. 전일하여 둘로 갈리지 않는 도로써 만물을 고찰하는 데에 도움이 되게 한다면 만물의 이치를 모두 알 수 있지만 만약 마음이 광범위하고 번잡하면 더욱 알 수가 없다.
○郝懿行:살펴보건대, 枝는 ‘岐’와 같으니, 옛 글자에 통용하였다. 岐란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단락은 마음이 둘로 갈린다는 윗글의 뜻을 거듭하여 설명한 것이다.
郭嵩燾:荀子의 뜻은 마음이 둘로 갈리지 않는 상태에서 깊이 유추해보면 만물의 이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몸으로 도를 완전히 아는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직 마음이 둘로 갈리지 않아야 하니, 사물의 준칙은 두 가지에서 구할 수 없다. 楊氏의 주는 틀렸다.
先謙案:王念孫이 “貳는 ‘貣(어긋나다)’의 오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관한 설명은 〈天論篇〉(17-5)에 보인다.
지금 살펴보건대, 이 ‘貳’자는 위아래 글과 긴밀하게 서로 이어받으니, 〈〈天論篇〉의 楊氏〉 주에 ‘貣’으로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옳지 않다. 王氏의 그 설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