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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3)

순자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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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0-212 午其軍하여 取其將 若撥麷하리니
讀爲迕 遇也 周禮籩人職云 其實麷蕡이라하니 이라하니라
據鄭之說이면 麥之牙蘗也 至脆弱이라 故以喩之 若撥麷 如以手撥麷也 音豐이라
○盧文弨曰 此本鄭康成周禮籩人注이니 彼種字作穜하고 此注宋本元刻俱作種이라 種穜二字 古今互易이라 此種麥 依古義正穜麥耳
郝懿行曰 午者 逆也 彼來而此逆之 取其將 若撥麷者 熬麥曰麷 見籩人注
乾煎也 今謂之煼 蓋麥乾煎則質輕脆 故撥去之甚易 荀義當然이라
籩人注又云 今河閒以北煮穜注+直龍反이라麥賣之하니 名曰逢이라하니 當音蓬이라
今江南人蒸稬米하여 曝乾煼之하고 呼米蓬하니 與鄭義合이라 知逢古音如蓬也 謂蓬蓬然張起
楊注旣引先鄭하여 於義已足이로되 而幷蔓引後鄭하고
又改其曰逢者爲麷하고 且云 據鄭之說이면 麥之牙蘖也라하니라 二鄭皆無此義어늘 楊氏不知而妄測之하니
兪樾曰 古義每存乎聲이라 麷旣音豐이니 卽可讀爲豐이라 尙書顧命篇豐席 이라하고
正義曰 釋草云 莞 苻蘺라하고 郭璞曰 今之西方人 呼蒲爲莞하고 用之爲席也라하며 王肅亦云 豐席이라하니 然則豐者 蒲也
蒲之爲物至脆弱이라 故以手撥之至易也 字本宜作豐이어늘 從麥旁作麷하니 乃古文假借字 楊泥本字爲說이라 故失之


적군을 맞아 싸우고 그 장수를 사로잡기를 마치 골풀을 잡아 뽑듯이 쉽게 할 것이니,
양경주楊倞注는 ‘’로 읽어야 하니, 만난다는 뜻이다. ≪주례周禮≫ 〈변인직籩人職〉의 “조사지변 기실풍분朝事之籩 其實麷蕡(조사례朝事禮를 행할 때 올리는 제기는 그 안에 볶은 보리와 들깨를 담는다.)”이라 한 곳에서 정씨鄭氏가 “은 볶은 보리[오맥熬麥]이다. 지금 하간河閒 이북에서는 심은 보리를 볶아 파는데 그 이름을 ‘’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정씨鄭氏의 설에 의하면 은 보리의 새싹이니, 매우 부드럽고 약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약발풍若撥麷은 손으로 보리 싹을 뽑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은 음이 ‘’이다.
노문초盧文弨:이 〈양경楊倞이 인용한 것은〉 본디 정강성鄭康成의 ≪주례周禮≫ 〈변인직籩人職〉의 주인데, 저 〈≪주례周禮≫ 원본에는〉 ‘’자가 ‘’으로 되어 있고 〈그 말을 인용한〉 이 주는 송본宋本원각본元刻本에 모두 ‘’으로 되어 있다. ‘’과 ‘’ 두 글자는 고금의 시대에 따라 바꿔 사용되었다. 이 ‘종맥種麥’은 옛 뜻에 의거해 ‘동맥穜麥’으로 쓰는 것이 올바르다.
학의행郝懿行란 ‘’의 뜻이니, 저쪽이 쳐들어오면 이쪽에서 막아낸다는 것이다. ‘취기장 약발풍取其將 若撥麷’이란 말은, 볶은 보리를 이라 한다는 것이 ≪주례周禮≫ 〈변인직籩人職〉의 주에 보인다.
는 볶는다는 뜻이니 지금은 그것을 ‘(볶다)’라고 이른다. 대체로 보리를 볶으면 그 질감이 가볍고 부숭부숭해지므로 그것을 치워 없애기가 매우 쉽다. ≪순자荀子≫에 인용한 뜻은 분명히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주례周禮≫ 〈변인직籩人職〉의 주에 또 “지금 하간河閒 이북에서는 심은注+은 음이〉 반절反切이다. 보리를 볶아 파는데 그 이름을 ‘’이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은 분명히 음을 ‘’이라 할 것이다.
지금 강남江南 사람들이 찹쌀을 쪄서 햇볕에 말린 다음 볶아내고 그것을 ‘미봉米蓬’이라 부르니, 정씨鄭氏가 말한 뜻과 부합된다. ‘’은 옛 음이 ‘’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은 부숭부숭 부풀어 오르는 것을 이른다.
이는 후정後鄭(정현鄭玄)이 말한 뜻으로서 선정先鄭(정중鄭衆)과는 다르다. 양씨楊氏의 주는 처음에 선정先鄭의 말을 인용하여 본문의 뜻에 대해 풀이한 것이 이미 충분한데도 후정後鄭이 한 말까지 거추장스럽게 인용하였으며,
또 그 ‘’이라 한 것을 ‘’으로 고치고 또 “정씨鄭氏의 설에 의하면 은 보리의 새싹이다.”라고 하였다. 두 정씨鄭氏가 한 말은 모두 이런 뜻이 없는데 양씨楊氏가 내용을 모르고 함부로 추측하였으니, 이는 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인 것이다.
유월兪樾:옛 글자의 뜻은 언제나 그 소리에 있다. 자가 이미 그 음이 ‘’이니 곧 ‘’으로 읽을 수 있다. ≪상서尙書≫ 〈주서 고명편周書 顧命篇〉에 “부중풍석敷重豐席(겹으로 된 골풀자리를 깐다.)”이라 한 곳의 매씨枚氏(매색梅賾)의 에 “은 골풀이다.”라 하고,
상서정의尙書正義≫에 “≪이아爾雅≫ 〈석초釋草〉에 ‘부리苻蘺(골풀)이다.’라 하고, 곽박郭璞이 ‘지금 서쪽 지방 사람들은 이라 부르고 그것으로 자리를 만든다.’라 하였으며, 왕숙王肅도 ‘풍석豐席이다.’라 했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이란 골풀이다.
골풀은 생긴 것이 극히 부드럽고 약하기 때문에 손으로 뽑기가 매우 쉽다. 이 글자는 본디 ‘’으로 쓰는 것이 옳은데 ‘’변을 붙여 ‘’이 되었으니, 이는 곧 옛 문자로서 가차자假借字이다. 양씨楊氏는 그 본디의 글자를 모르고 그와 같이 말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역주
역주1 朝事之籩 : 朝事는 朝踐禮와 같은 뜻인 朝事禮를 말한다. 천자나 제후가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 맨 처음 행하는 의식으로 날고기를 올리는 일이다. 籩은 제사나 연회 때 과일이나 고기를 담는 대나무그릇이다.
역주2 鄭云……名曰麷 : ≪周禮≫ 鄭玄의 注에서, 鄭衆의 말을 인용하여 ‘熬麥曰麷’이라 하였고, ‘今河閒以北煮種麥賣之 名曰麷’은 鄭玄의 말인데, ≪周禮≫ 鄭玄의 주에는 ‘名曰麷’의 ‘麷’이 ‘逢’으로 되어 있다.
역주3 後鄭義與先鄭異 : 後鄭은 鄭玄(172~200), 先鄭은 鄭眾(?~83)을 가리킨다. 鄭眾은 大司農을 지냈다 하여 鄭司農으로도 불리고, 鄭玄은 그의 자가 康成이므로 鄭康成으로도 불린다.
역주4 郢書燕說 : ≪韓非子≫ 〈外儲說〉에 보인다. 楚나라 도성인 郢 사람이 밤에 燕나라 재상에게 보낼 외교문서를 작성하면서 옆사람에게 입으로 불러주며 받아 적게 하였다. 이때 어두워 촛불을 잡은 사람에게 “촛불을 높이 들어라.[擧燭]”라고 하였는데, 받아 적는 사람이 글 속에 그 말까지 적어버렸다. 燕나라 재상이 그 문서를 받고 기뻐서 “촛불을 들어 올리라는 것은 밝은 것을 존중하라는 뜻이고, 밝은 것을 존중하라는 것은 유능한 사람을 뽑아 임용하라는 뜻이다.”라고 말하고, 자기 왕에게 건의하여 인재를 임용한 결과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原意를 곡해하여 잘못 전달한다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그럴 듯하게 말하는 고사로 사용된다. 牽强附會라는 말과 비슷하다.
역주5 ()[] : 저본에는 ‘坐’로 되어 있으나, ≪尙書≫ 〈周書 顧命〉에 의거하여 ‘重’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枚氏傳曰 豐莞 : ≪尙書≫ 孔安國의 傳에 나오는 말인데, 이것은 梅賾의 위작으로 알려져 있다. 梅賾의 성은 ‘枚’로도 쓴다.

순자집해(3) 책은 2021.01.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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