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午
는 讀爲迕
니 遇也
라 周禮籩人職云
에 其實麷蕡
이라하니 이라하니라
據鄭之說이면 麷은 麥之牙蘗也니 至脆弱이라 故以喩之라 若撥麷은 如以手撥麷也라 麷은 音豐이라
○盧文弨曰 此本鄭康成周禮籩人注이니 彼種字作穜하고 此注宋本元刻俱作種이라 種穜二字는 古今互易이라 此種麥은 依古義正穜麥耳라
郝懿行曰 午者는 逆也니 彼來而此逆之라 取其將을 若撥麷者는 熬麥曰麷이 見籩人注라
熬는 乾煎也니 今謂之煼라 蓋麥乾煎則質輕脆라 故撥去之甚易라 荀義當然이라
籩人注又云 今河閒以北煮穜
注+直龍反이라麥賣之
하니 名曰逢
이라하니 逢
은 當音蓬
이라
今江南人蒸稬米하여 曝乾煼之하고 呼米蓬하니 與鄭義合이라 知逢古音如蓬也라 蓬은 謂蓬蓬然張起라
此
라 楊注旣引先鄭
하여 於義已足
이로되 而幷蔓引後鄭
하고
又改其曰逢者爲麷
하고 且云 據鄭之說
이면 麷
은 麥之牙蘖也
라하니라 二鄭皆無此義
어늘 楊氏不知而妄測之
하니 皆
耳
라
兪樾曰 古義每存乎聲
이라 麷旣音豐
이니 卽可讀爲豐
이라 尙書顧命篇
에 敷
豐席
의 이라하고
正義曰 釋草云 莞은 苻蘺라하고 郭璞曰 今之西方人은 呼蒲爲莞하고 用之爲席也라하며 王肅亦云 豐席은 莞이라하니 然則豐者는 蒲也라
蒲之爲物至脆弱이라 故以手撥之至易也라 字本宜作豐이어늘 從麥旁作麷하니 乃古文假借字라 楊泥本字爲說이라 故失之라
注
양경주楊倞注:오午는 ‘오迕’로 읽어야 하니, 만난다는 뜻이다. ≪주례周禮≫ 〈변인직籩人職〉의 “조사지변 기실풍분朝事之籩 其實麷蕡(조사례朝事禮를 행할 때 올리는 제기는 그 안에 볶은 보리와 들깨를 담는다.)”이라 한 곳에서 정씨鄭氏가 “풍麷은 볶은 보리[오맥熬麥]이다. 지금 하간河閒 이북에서는 심은 보리를 볶아 파는데 그 이름을 ‘풍麷’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정씨鄭氏의 설에 의하면 풍麷은 보리의 새싹이니, 매우 부드럽고 약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약발풍若撥麷은 손으로 보리 싹을 뽑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풍麷은 음이 ‘풍豐’이다.
○노문초盧文弨:이 〈양경楊倞이 인용한 것은〉 본디 정강성鄭康成의 ≪주례周禮≫ 〈변인직籩人職〉의 주인데, 저 〈≪주례周禮≫ 원본에는〉 ‘종種’자가 ‘동穜’으로 되어 있고 〈그 말을 인용한〉 이 주는 송본宋本과 원각본元刻本에 모두 ‘종種’으로 되어 있다. ‘종種’과 ‘동穜’ 두 글자는 고금의 시대에 따라 바꿔 사용되었다. 이 ‘종맥種麥’은 옛 뜻에 의거해 ‘동맥穜麥’으로 쓰는 것이 올바르다.
학의행郝懿行:오午란 ‘역逆’의 뜻이니, 저쪽이 쳐들어오면 이쪽에서 막아낸다는 것이다. ‘취기장 약발풍取其將 若撥麷’이란 말은, 볶은 보리를 풍麷이라 한다는 것이 ≪주례周禮≫ 〈변인직籩人職〉의 주에 보인다.
오熬는 볶는다는 뜻이니 지금은 그것을 ‘초煼(볶다)’라고 이른다. 대체로 보리를 볶으면 그 질감이 가볍고 부숭부숭해지므로 그것을 치워 없애기가 매우 쉽다. ≪순자荀子≫에 인용한 뜻은 분명히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
주례周禮≫ 〈
변인직籩人職〉의 주에 또 “지금
하간河閒 이북에서는 심은
注+〈동穜은 음이〉 직直과 용龍의 반절反切이다. 보리를 볶아 파는데 그 이름을 ‘
봉逢’이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봉逢은 분명히 음을 ‘
봉蓬’이라 할 것이다.
지금 강남江南 사람들이 찹쌀을 쪄서 햇볕에 말린 다음 볶아내고 그것을 ‘미봉米蓬’이라 부르니, 정씨鄭氏가 말한 뜻과 부합된다. ‘봉逢’은 옛 음이 ‘봉蓬’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봉蓬은 부숭부숭 부풀어 오르는 것을 이른다.
이는 후정後鄭(정현鄭玄)이 말한 뜻으로서 선정先鄭(정중鄭衆)과는 다르다. 양씨楊氏의 주는 처음에 선정先鄭의 말을 인용하여 본문의 뜻에 대해 풀이한 것이 이미 충분한데도 후정後鄭이 한 말까지 거추장스럽게 인용하였으며,
또 그 ‘봉逢’이라 한 것을 ‘풍麷’으로 고치고 또 “정씨鄭氏의 설에 의하면 풍麷은 보리의 새싹이다.”라고 하였다. 두 정씨鄭氏가 한 말은 모두 이런 뜻이 없는데 양씨楊氏가 내용을 모르고 함부로 추측하였으니, 이는 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인 것이다.
유월兪樾:옛 글자의 뜻은 언제나 그 소리에 있다. 풍麷자가 이미 그 음이 ‘풍豐’이니 곧 ‘풍豐’으로 읽을 수 있다. ≪상서尙書≫ 〈주서 고명편周書 顧命篇〉에 “부중풍석敷重豐席(겹으로 된 골풀자리를 깐다.)”이라 한 곳의 매씨枚氏(매색梅賾)의 전傳에 “풍豐은 골풀이다.”라 하고,
≪상서정의尙書正義≫에 “≪이아爾雅≫ 〈석초釋草〉에 ‘완莞은 부리苻蘺(골풀)이다.’라 하고, 곽박郭璞이 ‘지금 서쪽 지방 사람들은 포蒲를 완莞이라 부르고 그것으로 자리를 만든다.’라 하였으며, 왕숙王肅도 ‘풍석豐席은 완莞이다.’라 했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풍豐이란 골풀이다.
골풀은 생긴 것이 극히 부드럽고 약하기 때문에 손으로 뽑기가 매우 쉽다. 이 글자는 본디 ‘풍豐’으로 쓰는 것이 옳은데 ‘맥麥’변을 붙여 ‘풍麷’이 되었으니, 이는 곧 옛 문자로서 가차자假借字이다. 양씨楊氏는 그 본디의 글자를 모르고 그와 같이 말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