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7 喪禮者
는 以生者飾死者也
니 大
其生以送其死也
라 故
死如生
하고 (如)[事]亡如存
하여 終始一也
라
注
○郝懿行曰 案檀弓云 之死而致生之는 不知而不可爲也라하니라 故言如死者는 知之盡也라
又云 之死而致死之는 不仁而不可爲也라하니라 故言如生者는 仁之至也라
中庸曰 事死如生하고 事亡如存이라하니 仁知備矣라
兪樾曰 如死如生하고 如亡如存은 義不可通이라 當作事死如生하고 事亡如存이니 上兩如字는 誤也라
篇末云 哀夫敬夫하라 事死如事生하고 事亡如事存하라하니 可知此文之譌라 當據以訂正이라
喪禮란 산 자를 〈대하는 것과 같은 정서로〉 죽은 자를 장식하는 것이니, 그 살아 있을 때의 정황을 대략 꾸며 그 주검을 송별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죽은 이 섬기기를 산 사람 섬기듯이 하고 없는 사람 섬기기를 있는 사람 섬기듯이 하여 인생의 종결과 시작을 동일하게 대하는 것이다.
注
楊倞注:이미 죽었다고 하여 살아 있을 때와 달리하거나, 이미 없다고 하여 존재할 때와 달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郝懿行:살펴보건대, ≪禮記≫ 〈檀弓〉에 “之死而致生之 不知而不可爲也(죽은 이를 葬送하면서 죽은 이가 지각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너무 지혜롭지 못하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 하였다. 그러므로 〈죽은 이를〉 죽은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은 지혜가 완전한 것이다.
≪禮記≫ 〈檀弓〉에 또 “之死而致死之 不仁而不可爲也(죽은 이를 葬送하면서 죽은 이가 지각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은 너무 인자하지 못하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 하였다. 그러므로 〈죽은 이를〉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은 인자함이 지극한 것이다.
≪中庸≫ 19章에 “事死如生 事亡如存(죽은 이 섬기기를 산 사람 섬기듯이 하고 없는 사람 섬기기를 있는 사람 섬기듯이 해야 한다.)”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어짊과 지혜가 완비된 것이다.
兪樾:‘如死如生 如亡如存’은 뜻이 통하지 않는다. 마땅히 ‘事死如生 事亡如存’으로 되어야 하니, 위의 두 ‘如’자는 잘못된 것이다.
이 편의 끝(19-219)에 “哀夫敬夫 事死如事生 事亡如事存(슬퍼하고 또 공경하라. 죽은 이 섬기기를 산 사람 섬기듯이 하고 없는 이 섬기기를 있는 사람 섬기듯이 해야 한다.)”이라 하였으니, 이 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땅히 그 글에 의거하여 정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