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汜는 水名이라 懷는 地名이라 書曰 覃懷底績에 孔安國曰 覃懷는 近河地名이라하니라
謂至汜而適遇水汎漲하고 至懷又河水汎溢也라 呂氏春秋曰 武王伐紂에 天雨하여 日夜不休라하니라 汜는 音祀라
○盧文弨曰 正文至汜
는 當作至氾
이라 左傳
에 鄙在鄭地氾
注+이라하니라이라하여 字從㔾
하고 不從巳
라
其地在成皐之閒
이라 又漢高卽位於氾水之陽
은 在定陶
注+漢書注에 音敷劍反이라하니라하니 非周師所經也
라 라
楊氏不知汜當爲氾하여 而卽音爲祀하니 誤矣라 又注河水汎溢下에 疑當有壞道二字라
王念孫曰 汪氏中曰 汜當作氾이니 音汎이라 字從㔾하고 不從巳라하니 其說是也라
然荀子所謂至氾者
는 究不知爲今何縣地
라 盧用汪說
하고 而引左傳鄙在鄭地氾爲證
注+僖二十四年이라하니라
案杜注云 鄭南氾也니 在襄城縣南이라하니 則非周師所至라 不得引爲至氾之證矣라
사수汜水에 이르렀을 때 강물이 범람하고 회성懷城에 이르렀을 때 하수河水 둑이 허물어졌으며,
注
양경주楊倞注:사汜는 강 이름이다. 회懷는 땅 이름이다. ≪서경書經≫ 〈하서 우공夏書 禹貢〉의 “담회저적覃懷底績(담회覃懷 일대의 치수에서 업적을 거두었다.)”에서 공안국孔安國이 “담회覃懷는 하수河水에 가까운 땅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사수汜水에 이르렀을 때 마침 비를 만나 강물이 불어나 넘쳤고 회懷 지방에 이르자 또 하수河水가 넘친 것을 이른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무왕武王이 주紂를 정벌할 때 비가 내려 밤낮으로 멈추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사汜는 음이 ‘사祀’이다.
○
노문초盧文弨:본문의 ‘
지사至汜’는 마땅히 ‘
지범至氾’으로 되어야 한다.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
비재정지범鄙在鄭地氾(외딴 곳으로 나와서
정鄭나라의
범氾 땅에 있다.)”이라고 되어 있어
注+≪경전석문經典釋文≫에 “〈범氾은〉 음이 ‘범凡(범)’이다.”라고 하였다. 글자가 ‘
절㔾’이 붙고 ‘
사巳’가 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땅은
성고成皐 부근에 있다. 또
한 고조漢 高祖가
범수氾水 북쪽에서 즉위하였다고 하는 그곳은
정도定陶에 있으므로
注+≪한서漢書≫ 주에 “〈범氾은〉 음이 부敷와 검劍의 반절反切이다.”라고 하였다. 주周나라 군사가 경유한 지역이 아니다.
범氾‧
범汎과
회懷‧
괴壞는 음으로 그 뜻을 이루는 글자이다.
양씨楊氏는 ‘사汜’가 마땅히 ‘범氾’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 그 음을 ‘사祀’라고 하였으니, 잘못되었다. 그리고 양씨楊氏의 주에서 ‘하수범일河水汎溢’ 밑에 아마도 당연히 〈도로가 허물어졌다는 뜻인〉 ‘괴도壞道’ 두 자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왕염손王念孫:왕중汪中 씨가 “사汜는 마땅히 ‘범氾’으로 되어야 하니, 음은 ‘범汎’이다. 글자가 ‘절㔾’이 붙고 ‘사巳’가 붙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그 설이 옳다.
그러나 ≪
순자荀子≫의 이른바 ‘
지범至氾’이란 끝내 지금 어느 고을인지 알 수 없다.
노씨盧氏는
왕씨汪氏의 설을 인용하고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
비재정지범鄙在鄭地氾’을 인용하여 증명하였다.
注+희공僖公 24년이다.
살펴보건대, 두예杜預 주에 “정鄭나라의 남범南氾이다. 양성현襄城縣 남쪽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주周나라 군사가 당도한 곳이 아니므로 그것을 인용하여 ‘지범至氾’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