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0 是以湯誅尹諧
하고 文王誅潘止
하고 周公誅
하고 太公誅
하고 管仲誅付里乙
하고 子產誅
史付
라
注
韓子曰 太公封於齊러니 東海上有居士曰狂矞華士昆弟二人이라 立議曰 吾不臣天子하고 不友諸侯라 耕而食之하고 掘而飮之하여 吾無求於人이라
無上之名하고 無君之禄하여 不仕而事力이라하여늘 太公使執而殺之하여 以爲首誅라
周公從魯聞
하여 急傳而問之曰 二子
는 賢者也
어늘 今日饗國殺之
는 何也
오하여늘 太公曰 是昆弟立議曰 不臣天子
라하니 是
不得而臣也
요
不友諸侯라하니 是望不得而使也요 耕而食之하고 掘而飮之하여 無求於人이라하니 是望不得以賞罰勸禁也라
且先王之所以使其臣民者는 非爵禄則刑罰也어늘 今四者不足以使之면 則望誰爲君乎잇가 是以誅之로이다하니라 尹諧潘止付里乙史付는 事迹竝未聞也라
○ 盧文弨曰 家語
엔 作管仲誅付乙
하고 子産誅史何
라하고 注先王
이 宋本
엔 作夫王
하며 無下民字
라 今據韓子外儲說右上增正
이라湯 周 文王 周公
이 때문에 탕湯은 윤해尹諧를 주살誅殺하고, 문왕文王은 반지潘止를 주살하고, 주공周公은 관숙管叔을 주살하고, 태공太公은 화사華仕를 주살하고, 관중管仲은 부리을付里乙을 주살하고, 자산子產은 등석鄧析과 사부史付를 주살하였다.
注
양경주楊倞注:≪한비자韓非子≫ 〈외저설外儲說 우상右上〉에 “강태공姜太公이 제齊나라 제후에 봉해졌는데 동해의 해변에 은거하는 광율狂矞과 화사華士라는 두 형제가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표방하기를 ‘우리는 천자를 신하의 예절로 섬기지 않고 제후를 벗으로 사귀지 않는다. 몸소 밭을 갈아 밥을먹고 우물을 파 물을 마셔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구하는 것이 없다.
군주가 주는 명성을 바라지 않고 군주가 주는 녹봉도 바라지 않아 벼슬살이를 하지 않고 체력 노동에 종사할 뿐이다.’라고 하였는데, 강태공이 관리를 보내 그들을 잡아 죽이게 하여 가장 먼저 주살誅殺하는 대상으로 삼았다.
주공周公이 노魯나라에서 그 소식을 듣고 급히 파발꾼을 내보내 그에게 묻기를 ‘이 두 사람은 어진 인물들인데 지금 제후국에 봉해지자마자 이들을 죽인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자, 강태공이 말하기를 ‘이들 형제가 〈스스로〉 표방하기를 「〈우리는〉 천자를 신하의 예절로 섬기지 않는다.」라 하였으니 이는 내[망望]가 신하로 거느릴 수 없다는 것이고,
「제후를 벗으로 사귀지 않는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부릴 수 없다는 것이고, 「몸소 밭을 갈아 밥을 먹고 우물을 파 물을 마셔 다른 사람에게 구하는 것이 없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그들을 상벌賞罰로 격려하거나 제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대의
성왕聖王이 그
신민臣民을 부리는 도구는
작록爵禄이 아니면
형벌刑罰인데, 지금 〈이
작爵․
녹禄․
형刑․
벌罰의〉 네 가지로 부릴 수 없다면 내가 누구를 위해 군주 노릇을 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이들을 주살한 것입니다.’라 했다.”라고 하였다.
윤해尹諧․
반지潘止․
부리을付里乙․
사부史付는 이들에 대한 사적을 모두 들어보지 못했다.
태공망太公望 관중管仲 자산子産
○ 노문초盧文弨:〈‘관중주부리을管仲誅付里乙 자산주등석사부子產誅鄧析史付’가〉 ≪공자가어孔子家語≫ 〈시주始誅〉에는 ‘관중주부을管仲誅付乙 자산주사하子産誅史何’로 되어 있고, 〈양씨楊氏〉 주注의 ‘선왕先王’이 송본宋本에는 ‘부왕夫王’으로 되어 있으며 그 아래(기신민자其臣民者) ‘민民’자는 없다. 여기서는 ≪한비자韓非子≫ 〈외저설外儲說 우상右上〉에 의거하여 글자를 추가하고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