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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1)

순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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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59 故不問而告謂之
喧噪也 言與戲傲無異
或曰 讀爲嗷 口嗷嗷然也
嗷與敖通이라
○ 盧文弨曰 口嗷嗷 舊本作聲曰嗷嗷어늘 今改正하니라
郝懿行曰 傲與謷同이라
說文云 謷不省人言也라하니 與此義合이라
俞樾曰 季氏篇 言未及之而言謂之躁라하여늘 釋文曰 魯讀躁爲傲라하니 荀子此文 蓋本魯論이라
下文曰 故未可與言而言謂之傲 可與言而不言謂之隱이요 不觀氣色而言謂之瞽라하여 皆與論語同하고 惟變躁爲傲하니 可證也
即躁之假字
不問而告 未可與言而言 皆失之躁 非失之傲也
魯論之說 今不可得而詳이라 以意度之컨대 殆亦假傲爲躁
自古文論語出하여 得其本字 遂謂魯論讀躁爲傲라하나 實不然也
躁字義長하고 傲字義短하니 魯之經師 豈不知此而改躁爲傲乎리오
先謙案俞說是


그러므로 남이 묻지 않는데 고하는 것을 거만하다 이르고,
양경주楊倞注 : ‘’는 시끄럽게 군다는 뜻으로, 장난을 치고 거만을 피우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자로 읽어야 하니 입으로 시끄럽게 떠들어댄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는 ‘’와 통한다.
노문초盧文弨 : ‘구오오口嗷嗷’는 구본舊本에 ‘성왈오오聲曰嗷嗷’로 되어 있는 것을 여기서는 고쳐 바로잡았다.
학의행郝懿行 : ‘’는 ‘’와 같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남의 말을 살펴보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이것과 뜻이 부합된다.
유월俞樾 : 《논어論語》 〈계씨편季氏篇〉에 “〈군자의〉 말씀이 아직 미치지 않았는데 먼저 말하는 것을 경망하다[躁] 이른다.”라고 하였는데, 《경전석문經典釋文》에 “《노론魯論》에는 ‘’를 ‘’로 간주해 읽었다.”라고 하였으니, 《순자荀子》의 이 문구는 아마도 《노론魯論》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아래 글에 “그러므로 함께 대화할 수 없는데도 말을 거는 것을 거만하다[傲] 이르고, 함께 대화할 수 있는데도 말을 걸지 않는 것을 숨긴다[隱] 이르고, 상대방의 기색을 살펴보지 않고 말을 거는 것을 소경[瞽]이라 이른다.”라고 한 것은 모두 《논어論語》와 같고 오직 ‘’를 ‘’로 바꾸기만 했을 뿐이니, 〈이것으로 《노론魯論》을 따랐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는 곧 ‘’의 가차자假借字인 것이다.
상대가 묻지 않는데도 고한다거나 함께 대화할 수 없는데도 말을 거는 행위는 경박함으로 인한 잘못이지 거만함으로 인한 잘못은 아니다.
노론魯論》의 설은 지금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추측해보건대 아마도 또한 가차자假借字로 사용하여 를 대체한 듯하다.
그러다가 고문 《논어論語》가 출현하여 그 본래의 글자를 알게 되면서 마침내 ‘《노론魯論》에는 ‘’를 ‘’로 간주해 읽었다.’라고 말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는 뜻이 원만하고 ‘’자는 뜻이 미진한데, 나라의 경사經師가 어찌 이것을 몰라 ‘’를 ‘’로 고쳤겠는가.
선겸안先謙案 : 유씨俞氏의 설이 옳다.


역주
역주1 : 俞樾의 설을 따라 거만하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역주2 論語 : 漢나라 때 《魯論》‧《齊論》‧《古論》 등 3종의 《論語》가 있었는데, 이것은 《古論》으로 古文 《論語》를 가리킨다. 漢 武帝 때 魯恭王 劉餘가 그의 집을 확장하기 위해 공자의 옛 저택을 헐다가 벽장 속에서 과두문자로 된 옛 서적들을 발견하였는데, 그중 하나이다. 다음에 보이는 《魯論》은 魯나라 사람이 전한 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今文本 《論語》를 말한다.

순자집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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