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郝懿行曰 藏은 古作臧하니 荀書皆然이라 橫은 古作衡하니 上言連衡亦然이라 此皆俗人所改라
此本作見謂從橫이니 言公正無私之人이 反以從橫見謂於世也라 楊注內見謂二字 即其證이라
凡見譽於人
을 曰見謂
하니 若王霸篇曰 齊桓公閨門之內
에 縣樂奢泰
하여 游抏之
이나 於天下不見謂修
와
賈子修政語篇曰 故言之者見謂智하고 學之者見謂賢하고 守之者見謂信하고 樂之者見謂仁하고 行之者見謂聖이 皆是也라
見毀於人도 亦曰見謂하니 若莊子逹生篇曰 居鄕不見謂不修하고 臨難不見謂不勇과
漢書兒寛傳曰 張湯爲廷尉에 盡用文史法律之吏어늘 而寬以儒生在其閒하여 見謂不習事와
邶風谷風箋曰 涇水以有渭
라 故見謂濁
注+① 今本謂譌作渭하니 據正義改라과 及此言見謂縱橫
이 皆是也
라
後人不曉見謂二字之義하고 又以楊注云 反見謂從橫으로 遂改正文見謂爲反見하니
注
양경주楊倞注:공정하고 사심이 없는 사람이 도리어 수완을 부리고 변덕스런 뜻을 〈지녔다는 비난을〉 받는다는 말이다.
○학의행郝懿行:장藏은 옛날에 ‘장臧’으로 되어 있었으니, ≪순자荀子≫에 모두 그렇게 되어 있다. 횡橫은 옛날에 ‘형衡’으로 되어 있었으니, 위(26-64)에 말한 ‘연횡連衡’ 또한 그렇다. 이것은 모두 세속 사람이 고친 것이다.
왕염손王念孫:‘반견종횡反見從橫’ 네 자는 글이 뜻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것은 본디 ‘견위종횡見謂從橫’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니 공정하고 사심이 없는 사람이 도리어 수완을 부린다는 것으로 세상에서 비난을 받는다는 말이다. 양씨楊氏 주 안의 ‘견위見謂’ 두 자가 곧 그 증거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것을 ‘견위見謂’라고 말하니, 〈왕패편王霸篇〉에 “제환공규문지내齊桓公閨門之內 현락사태縣樂奢泰 유완지순游抏之循 어천하불견위수於天下不見謂修(제齊 환공桓公은 궁궐 안에서 향락과 사치가 극에 달하여 즐길 거리를 모두 갖췄으나 천하 사람들이 그것을 수치거리로 여기지 않았다.)”라 한 것과,
≪가자賈子(≪가의신서賈誼新書≫)≫ 〈수정어편修政語篇〉에 “고언지자견위지故言之者見謂智 학지자견위현學之者見謂賢 수지자견위신守之者見謂信 낙지자견위인樂之者見謂仁 행지자견위성行之者見謂聖(그러므로 〈도를〉 말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라 여겨지고, 〈도를〉 배우는 사람은 현인賢人으로 여겨지고, 〈도를〉 지키는 사람은 진실한 자라 여겨지고, 〈도를〉 즐기는 사람은 어진 자라 여겨지고, 〈도를〉 행하는 사람은 성인聖人이라 여겨진다.)”이라 한 것이 모두 이 경우이다.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받는 것도 ‘견위見謂’라고 말하니, ≪장자莊子≫ 〈달생편逹生篇〉에 “거향불견위불수居鄕不見謂不修 임난불견위불용臨難不見謂不勇(지방에 살 때는 〈내가〉 수양이 없다고 여겨지지 않았고, 재난에 임했을 때는 〈내가〉 용감하지 않다고 여겨지지 않았다.)”이라 한 것과,
≪한서漢書≫ 〈아관전兒寛傳〉에 “장탕위정위張湯爲廷尉 진용문사법률지리盡用文史法律之吏 이관이유생재기간而寬以儒生在其閒 견위불습사見謂不習事(장탕張湯이 정위廷尉를 맡았을 때 〈그의 관청에〉 문서를 다루고 일을 기록하며 법률을 아는 관리들로 충원하였는데, 아관兒寛은 유생儒生의 신분으로 그 사이에 끼어 사리를 숙달하지 못한다고 여겨졌다.)”라 한 것과,
≪
시경詩經≫ 〈
패풍邶風 곡풍谷風〉의
정현鄭玄 전箋에 “
경수이유위涇水以有渭 고견위탁故見謂濁(
경수涇水는
위수渭水가 있기 때문에 물이 흐리다고 여겨졌다.)”이라 한 것과,
注+지금 판본에는 ‘謂’가 ‘渭’로 잘못되어 있으니, ≪毛詩正義≫에 의거하여 고쳤다. 여기서 말한 ‘
견위종횡見謂縱橫’이 모두 이 경우이다.
후세 사람이 ‘견위見謂’ 두 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양씨楊氏의 주에 ‘반견위종횡反見謂從橫’이라 한 것으로 인해 마침내 본문의 ‘견위見謂’을 ‘반견反見’으로 고쳤으니,
이는 양씨楊氏의 주는 ‘반反’자를 붙여 그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일 뿐이고, 본문에 그것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몰라서이다.
≪예문유취藝文類聚≫ 〈인부人部 팔八〉에는 이 문구를 인용하여 ‘견위종횡見謂從橫’으로 바르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