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渠匽은 所以制水요 櫽括은 所以制木이니 君子制人亦猶此也라
爾雅에 隄는 謂之梁이라하고 鄭仲師注周官䱷人云 梁은 水偃也라하니라
梁渠形相似
하여 遂誤爲渠耳
라注+史記建元以來侯表煇渠忠侯僕多는 廣韻引風俗通에 渠作梁하고 漢書地理志彊梁原은 水經渭水注作荊渠原하며 後漢書安帝紀高渠谷은 注引東觀記作高梁谷하니라
외적인 상황에 맞춰, 마치 흐르는 물을 막는 제방처럼, 휘어진 나무를 바로잡는 기구처럼 자기 자신을 단속한다.
注
양경주楊倞注 : ‘부府’는 ‘부俯(구부리다)’자와 같으니, 외적인 상황에 맞추는 모양이다.
거언渠匽은 흐르는 물을 제어하는 것이고, 은괄櫽括은 휘어진 나무를 제어하는 것이니, 군자가 다른 사람을 제어하는 것도 이와 같다.
○ 왕인지王引之 : 본문과 양씨楊氏 주 글의 ‘거渠’자는 아마도 모두 ‘양梁’자의 잘못인 듯하다.
《이아爾雅》에 “‘제隄’는 ‘양梁’이라 이른다.”라고 하고, 정중사鄭仲師(鄭衆)의 《주례周禮》 〈주관周官 어인䱷人〉 주에 “‘양梁’은 물 제방[水偃]이다.”라고 하였다.
‘언偃’과 ‘언匽’은 통용하니, 곧 ‘언堰’자이다.
‘양梁’과 ‘언匽’은 같은 뜻이기 때문에 ‘양梁’과 ‘언匽’을 함께 이어서 쓴 것이다.
‘
양梁’과 ‘
거渠’가 모양이 서로 비슷하여 마침내 ‘
거渠’로 잘못된 것일 뿐이다.
注+《사기史記》 〈건원이래후자연표建元以來侯者年表〉의 ‘휘거충후복다煇渠忠侯僕多’는 《광운廣韻》에 인용된 《풍속통風俗通》에 ‘거渠’가 ‘양梁’으로 되어 있고,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의 ‘강량원彊梁原’은 《수경주水經注》 〈위수渭水〉에 ‘형거원荊渠原’으로 되어 있으며, 《후한서後漢書》 〈안제기安帝紀〉의 ‘고거곡高渠谷’은 주에 인용된 《동관기東觀記》에 ‘고량곡高梁谷’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