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8 少言則徑而省
하고 論而法
하여 若
之以繩
이 是士君子之知也
라
注
徑은 易也라 省은 謂辭寡라 論而法은 謂論議皆有法하여 不放縱也라 論은 或爲倫이라 佚은 猶引也라 佚以繩은 言其直也라
聖人經營事廣이라 故曰多言하고 君子止恭其所守라 故曰少言也라
○郝懿行曰 徑者는 直也라 論은 猶倫也라 古論倫字亦通이라 佚者는 隱也니 言若闇合於繩墨하여 不邪曲也라 楊注非라
俞樾曰 楊注에 佚은 猶引也라하나 然佚無引義하니 恐不可從이라 佚은 當讀爲秩이니 秩之言은 次也며 序也라
僖三十一年公羊傳
에 天子秩而祭之
의 何休注曰 秩者
는 隨其大小尊卑高下所宜
라하니라 이라
尙書堯典의 平秩東作과 平秩南訛와 平秩西成이 史記五帝本紀에 秩皆作程이라
段玉裁以說文𢧤𧾞字皆讀若詩秩秩大猷爲證이라 是程與秩은 聲義俱相近이라 秩之以繩은 猶程之以繩也라
말을 적게 하지만 단순 명료하여 간결하고 조리가 있어 법도에 맞아 마치 먹줄로 제어하는 것과 같은 것이 곧 사군자士君子의 지혜이다.
注
양경주楊倞注:경徑은 쉽다는 뜻이다. 성省은 말이 적은 것을 이른다. 논이법論而法은 논의가 모두 법도가 있어 함부로 내뱉지 않는 것을 이른다. 논論은 간혹 ‘윤倫’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일佚은 ‘인引(팽팽하게 끌어당기다)’과 같다. 일이승佚以繩은 그가 〈하는 말이〉 곧다는 말이다.
성인聖人은 경영하는 일의 범위가 넓으므로 ‘다언多言’이라 말하고, 군자君子는 자기가 지켜야 할 일에 대해서만 신중히 처리하면 되므로 ‘소언少言’이라 말한 것이다.
○학의행郝懿行:경徑이란 곧바르다는 뜻이다. 논論은 ‘윤倫’과 같다. 옛 문헌에는 ‘논論’과 ‘윤倫’자를 또 서로 통용하였다. 일佚이란 ‘은隱’의 뜻이니, 하는 말이 은연중에 곧은 먹줄과 부합하는 것과 같아 요사스럽고 왜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씨楊氏의 주는 틀렸다.
유월俞樾:양씨楊氏의 주에 “일佚은 ‘인引’과 같다.”고 하였으나 일佚에는 끌어당긴다는 뜻이 없으니, 따를 수 없을 것 같다. 일佚은 마땅히 ‘질秩’로 읽어야 하니, 질秩이란 말은 차례이며 질서라는 뜻이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희공僖公 31년에 “천자질이제지天子秩而祭之(천자가 〈뭇 산천山川의 작위爵位를〉 차례로 정해 제사를 지낸다.)”라 한 곳의 하휴何休 주에 “질秩이란 그 크기의 대소大小와 위상의 존비尊卑와 높이의 고하高下 등에 접합한 것에 따라 〈적절히 정한다는 뜻이다.〉”라 하였다. 옛 문헌에는 〈질秩자가〉 또 일반적으로 ‘정程’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상서尙書≫ 〈요전堯典〉의 ‘평질동작平秩東作(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시각을 관찰하여 변별한다.)’과 ‘평질남와平秩南訛(태양이 남쪽을 향해 운행하는 정황을 관찰하여 변별한다.)’와 ‘평질서성平秩西成(태양이 서쪽으로 지는 시각을 관찰하여 변별한다.)’이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이 ‘질秩’이 모두 ‘정程’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 단옥재段玉裁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𢧤’과 ‘𧾞’자를 모두 ≪시경詩經≫ 〈소아小雅 교언巧言〉의 “질질대유秩秩大猷(조리 있는 국가의 크나큰 계책)”의 〈질秩자처럼〉 읽는다고 한 것을 증거로 삼았다. 이는 정程과 질秩은 음과 뜻이 다 서로 가깝기 때문이다. 질지이승秩之以繩은 ‘정지이승程之以繩(먹줄로 사물을 측량한다.)’과 같다.
〈치사편致仕篇〉에 “정程이란 물건을 측량하는 표준이다.”라 하였으니, 곧 그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