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4 驗之所
爲有名
하여 而觀其孰行
하면 則能禁之矣
리라
注
驗其所爲有名이 本由不喩之患과 困廢之禍하고 因觀見侮不辱之說이 精孰可行與否면 則能禁也니 言必不可行也라
○王引之曰 驗之所下以字와 及下文驗之所緣下無字는 皆後人所增이라
據注云 驗其所爲有名과 驗其所緣同異에 則上無以字하고 下無無字明甚이라
上文云 所爲有名
注+爲는 卽以也니 說見釋詞라과 與所緣以同異
를 不可不察也
라 故此承上文而言之
라 又案 孰者
는 何也
注+ 說見釋詞라라
觀其孰行者는 觀其何所行也요 觀其孰調者는 觀其何所調也라 楊讀孰爲熟하여 而訓爲精熟하니 則義不可通이라
명칭이 있게 된 원인을 고찰하여 어느 쪽이 과연 행해질 수 있는가 살펴본다면 그 설을 금지할 수 있을 것이다.
注
楊倞注:명칭이 있게 된 원인이 본디 사람들의 생각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걱정거리와 상황이 곤경에 처하는 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고찰하고, 이어서 모욕을 당하더라도 치욕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설이 원만하여 과연 행해질 수 있을지의 여부를 살펴본다면 〈그와 같은 설을〉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니, 반드시 행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王引之:‘驗之所’ 아래의 ‘以’자와 아랫글(22-66) ‘驗之所緣’ 아래의 ‘無’자는 모두 후세 사람이 추가한 것이다.
〈楊氏의〉 주 ‘驗其所爲有名’과 ‘驗其所緣同異’라 한 것을 근거로 볼 때, 위는 ‘以’자가 없고 아래는 ‘無’가 없다는 것이 매우 분명하다.
윗글(22-27)에 “
所爲有名注+爲는 곧 ‘以’이니, 이에 관한 설명은 ≪經傳釋詞≫에 보인다. 與所緣以同異 不可不察也(명칭이 있게 된 원인과 무엇 때문에 〈사물의 명칭이〉 같은 것이 있고 다른 것이 있는지 〈그 이유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 하였기 때문에 여기서 그 윗글을 이어받아 말한 것이다. 또 살펴보건대,
孰이란 ‘무엇’이라는 뜻이다.
‘
觀其孰行’은 어느 쪽이 행해질 수 있는가를 살펴본다는 것이고, 〈아랫글(22-66)의〉 ‘
觀其孰調’는 어느 쪽이 조화를 이루는가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楊氏는 ‘
孰’을 ‘
熟’으로 간주해 읽어 그 뜻을 ‘
精熟(원만하다)’으로 풀이하였으니, 뜻이 통하지 않는다.
注+이에 관한 설명은 ≪經傳釋詞≫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