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王念孫曰 愉는 讀爲偸하고 愉上當有不字라 出死斷亡而不愉者는 民皆死其君事而不偸生也라
楊所見本已脫不字라 故誤以愉爲歡愉之愉라 下文爲之出死斷亡而愉의 愉上亦脫不字라
王霸篇曰 爲之出死斷亡而不愉 群書治要引作不偸하니 足正此篇之誤라 楊不知愉爲古偸字하여 反以不爲衍文하니 謬矣라
說文에 偸薄字本作愉하고 從心하고 兪聲이라하니라 爾雅에 佻는 偸也라하고 小雅鹿鳴傳에 作恌는 愉也라하니라
周官大司徒
의 則民不愉 桓七年公羊傳注
에 則民不
하고 坊記注
에 不愉於死亡
이라하며 釋文竝音偸
하고
漢繁陽令楊君碑
의 不愉祿求趨
도 亦與偸同
注+唐風山有樞篇에 他人是愉의 鄭箋에 愉는 讀爲偸라하고 大戴禮文王官人篇에 欲色嘔然以偸라하여늘 逸周書에 偸作愉라이라 經傳中愉字或作偸者
는 皆後人所改也
라
此篇之出死斷亡而不愉는 若非脫去不字면 則後人亦必改爲偸矣리라
부모처럼 친근하게 여기며 그를 위하여 사력을 다해 결사적으로 노력하고 구차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은
注
○왕염손王念孫:투愉는 ‘투偸’로 읽어야 하고 ‘투愉’ 위에 마땅히 ‘불不’자가 있어야 한다. ‘출사단망이불투出死斷亡而不愉’는 백성들이 모두 그들 군주의 일을 위해 죽고 구차하게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씨楊氏가 보았던 판본에는 이미 ‘불不’자가 빠졌기 때문에 투愉를 기쁘다는 뜻인 ‘유愉’로 잘못 풀이한 것이다. 아래 글에 ‘위지출사단망이투爲之出死斷亡而愉’의 ‘투愉’ 위에도 ‘불不’자가 빠졌다.
〈왕패편王霸篇〉의 ‘위지출사단망이불투爲之出死斷亡而不愉’가 ≪군서치요群書治要≫에 인용된 곳에 ‘불투不偸’로 되어 있으니, 이 편의 잘못을 충분히 바로잡을 만하다. 양씨楊氏는 ‘투愉’가 ‘투偸’의 옛 글자라는 것을 몰라 도리어 ‘불不’을 잘못 덧붙여진 글자라고 하였으니, 잘못되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투박하다는 뜻의 글자가 본문에 ‘유愉’로 되어 있고 “심心은 형부形符가 되고 유兪는 성부聲符가 된다.”라고 하였다. ≪이아爾雅≫에 “조佻는 ‘투偸’의 뜻이다.”라 하고, ≪시경詩經≫ 〈소아 녹명小雅 鹿鳴〉의 〈모전毛傳〉에 “조恌는 ‘투愉’의 뜻이다.”로 되어 있다.
≪주례周禮≫ 〈대사도大司徒〉의 ‘즉민불투則民不愉’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환공桓公 7년의 주에 ‘즉민불투則民不偸’로 되어 있고, ≪예기禮記≫ 〈방기坊記〉의 주에 “불투어사망不愉於死亡(죽은 자에게 박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이라 하였으며, ≪경전석문經典釋文≫에 모두 음이 ‘투偸’로 되어 있고,
한漢나라 〈
번양령양군비繁陽令楊君碑〉에 “
불투록구추不愉祿求趨(녹봉을 훔치거나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의 ‘
투愉’도 ‘
투偸’와 같다.
注+≪시경詩經≫ 〈당풍 산유추唐風 山有樞〉편에 ‘타인시투他人是愉’라 한 곳의 정현鄭玄의 전箋에 “투愉는 ‘투偸’로 읽어야 한다.”라 하고, ≪대대례기大戴禮記≫ 〈문왕관인文王官人〉편에 “욕색구연이투欲色嘔然以偸(무엇을 바라는 안색은 부드러워 구차스럽다.)”라 하였는데, ≪일주서逸周書≫에는 그 ‘투偸’가 ‘투愉’로 되어 있다. 경전經傳 가운데 ‘
투愉’자가 간혹 ‘
투偸’로 되어 있는 것은 모두 뒷사람이 고친 것이다.
이 편의 ‘출사단망이불투出死斷亡而不愉’는 만약 ‘불不’자가 빠지지 않았더라면 뒷사람이 이 또한 반드시 고쳐 ‘투偸’로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