容貌態度進退趨行이 由禮則雅하고 不由禮則夷固僻違하여 庸衆而野니라
注
庸은 凡庸이요 衆은 衆人이며 野는 郊野之人이라
○ 郝懿行曰 雅는 對野言이니 則兼正也嫺也二義라
修身篇又云 體倨固而心埶詐
라하니注+今本埶譌作執하니 辯見後執詐一條라 是固與倨同義
라注+楊注에 固는 鄙固也라하니 亦非라
祭義曰 孝子之祭也
에 立而不詘
은 固也
라하니 詘
은 卑詘也
며 固
는 倨也
라注+立而不詘은 是倨傲也라 鄭注에 詘은 充詘이니 形容喜貌也라하고 固는 猶質陋也라하니 皆失之라
大戴禮曾子立事篇曰 弗知而不問焉
은 固也
라하니 固亦倨也
라注+不肯下人은 是倨傲也라 曾子制言篇曰 今之弟子病下人하여 不能事賢하고 恥不知而又不問이라하니라
예법을 따르지 않으면 수시로 위험한 일이 일어난다.
용모容貌와 태도態度, 진퇴進退와 행보行步에서 예법을 따르면 품격이 고상하고 예법을 따르지 않으면 거만하고 간사하여 평범한 사람처럼 촌스럽다.
注
양경주楊倞注 : ‘이夷’는 거만하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원양이사原壤夷俟(原壤이 거만하게 앉아 기다렸다.)”라고 하였다.
‘용庸’은 평범하다는 것이고, ‘중衆’은 일반 사람이며, ‘야野’는 들판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 학의행郝懿行 : ‘아雅’는 ‘야野’의 대구로 한 말로서 ‘바르다’와 ‘우아하다’는 두 가지 뜻을 겸하고 있다.
왕인지王引之 : 양경楊倞은 ‘이고夷固’를 나누어 두 가지 뜻으로 풀이하였으니, 이는 틀린 것이다.
‘이고夷固’는 ‘이거夷倨’와 같으니 ‘이고벽위夷固辟違’는 ‘거오벽위倨傲僻違’와 같다.
〈불구편不苟篇〉에 “거오벽위倨傲僻違 이교일인以驕溢人(거만하고 간사한 심술로 다른 사람을 깔아뭉갠다.)”이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경우이다.
〈
수신편修身篇〉에 또 “
체거고이심예사體倨固而心埶詐(태도가 오만하고 고집스러우며 마음이 계략적이고 교활하다.)”라고 하였으니,
注+지금 판본에는 ‘예埶’가 ‘집執’으로 잘못되었다. 이에 대한 논변은 뒤의 ‘집사執詐’ 조항에 보인다. 이로 볼 때 ‘
고固’는 ‘
거倨(거만하다)’와 같은 뜻이다.
注+양경楊倞의 주에 “‘고固’는 고루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틀렸다.
《
예기禮記》 〈
제의祭義〉에 “
효자지제야孝子之祭也 입이불굴立而不詘 고야固也(孝子가 제사를 지낼 때 곧게 서 있으면서
굴詘하지 않는 것은
고固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
굴詘’은 몸을 낮추어 굽힌다는 뜻이고, ‘
고固’는 거만하다는 뜻이다.
注+서 있으면서 몸을 굽히지 않는 것은 곧 거만한 것이다. 정현鄭玄의 주에 “‘굴詘’은 만족하다는 뜻으로 기뻐하는 모양을 형용한 것이다.” 하고, “‘고固’는 질박하고 고루하다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모두 잘못되었다.
《
대대례기大戴禮記》 〈
증자입사편曾子立事篇〉에 “모르면서도 묻지 않는 것은
고固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여기서의 ‘
고固’ 또한 거만하다는 뜻이다.
注+남에게 자기를 낮추려고 하지 않는 것은 곧 거만한 것이다. 《대대례기大戴禮記》 〈증자제언편曾子制言篇〉에 “오늘날 자제들은 남에게 자기를 낮추는 것을 싫어하여 능히 훌륭한 사람을 섬기지 못하고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또 묻지를 않는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