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或曰 李巡注爾雅冀州曰 冀는 近也라하니 恭近은 謂不敢放誕也라
此言行而張拱顧望은 乃是恭敬審諦요 非恐漸漬於泥淖也라
釋名에 恭은 拱也니 自拱持也라하니 是供訓爲恭이며 而拱義即在其中이라
釋詁에 翼은 敬也라하고 論語鄕黨篇의 趨進할새 翼如也에 孔注言端好라하니라
容經
에 趨以
으로 飄然翼然
하여 肩狀若流
하고 足如射箭
이라하니라
以此文推컨대 供冀之義는 正狀其趨走疾速으로 是爲禮之容이요 非因有泥淖漬之也라
길을 걸을 적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은 진창에 옷이 젖을까 염려해서가 아니고,
注
양경주楊倞注 : ‘공供’은 ‘공恭’이고, ‘기冀’는 마땅히 ‘익翼’이 되어야 한다.
대체로 길을 걸을 적에 스스로 으레 공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진창에 옷이 젖을까 염려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 진창 속에 있으면 조심스러워지는 법이다.
혹자는 “이순李巡이 《이아爾雅》의 ‘기주冀州’를 풀이한 부분에 ‘기冀는 가깝다는 뜻이다.’라 했다.” 하였으니, 〈이 설을 따른다면〉 ‘공근恭近’은 감히 아무렇게나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 노문초盧文弨 : ‘공供’은 아마도 팔을 벌리고 두 손을 맞잡는다는 ‘장공張拱’의 뜻인 듯하다.
학의행郝懿行 : ‘공供’과 ‘공拱’‧‘기冀’와 ‘기覬’는 각기 음도 같고 글자도 통용된다.
그 뜻은 ‘기冀’와 ‘기覬’의 경우 모두 바라본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길을 걸을 적에 두 팔을 벌려 손을 맞잡거나 주위를 둘러보는 것은 곧 공경하는 태도로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지, 진창에 옷이 젖을까 두려워서 그런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석명釋名》에 “‘공恭’은 ‘공拱(두 손 맞잡다)’자와 같으니 스스로 마음을 공손하게 지닌다는 뜻이다.”라고 하였으니, 여기 ‘공供’자도 공손하다는 뜻이 되고 ‘공拱’의 뜻이 곧 그 안에 들어 있다.
《이아爾雅》 〈석고釋詁〉에 “‘익翼’은 ‘경敬’의 뜻이다.”라고 하고, 《논어論語》 〈향당편鄕黨篇〉의 “추진趨進 익여야翼如也(빨리 걸어 나가실 때 날개를 편 듯하였다.)”라고 한 부분에서 공안국孔安國의 주에 “단정하여 보기 좋은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가자賈子(新書)》 〈용경容經〉에 “추이미경지용趨以微罄之容 표연익연飄然翼然 견장약류肩狀若流 족여사전足如射箭(빨리 걸을 때는 약간 굽은 자세로 사뿐사뿐 걷되 어깨의 모습은 물이 흐르듯 유연하게 하고 발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쭉쭉 내뻗어야 한다.)”이라고 하였다.
이 글로 미루어보건대, ‘공기供冀’의 뜻은 빨리 걸을 때의 자세를 형용한 것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예법에 맞는 자세가 되고 길바닥에 진창이 있어 옷을 적실까 봐 그런 것이 아니다.
두 팔을 벌려 손을 맞잡거나 주위를 둘러보는 자세 같은 것은 〈걸을 때의〉 예법에 맞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