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王念孫曰 困學紀聞
에 云 靑出之藍
이 作靑取之於藍
하니 監本未必是
요 建本未必非
라하니注+云 今監本은 乃唐台州所栞熙寧舊本이니 亦未爲善이라하고 又云 云 五泰는 五帝也라하여늘 監本改爲五帝而刪注文이라하니라 是
以作出者爲是也
라
元刻作出之藍은 即本於建本하고 監本作取之於藍者는 用大戴記改之也라
荀子本文自作出於藍하여 藝文類聚草部上과 太平御覽百卉部三及意林과 埤雅 引此竝作出於藍하고 新論崇學篇同이라
史記褚少孫續三王世家引傳曰 靑采出於藍而質靑於藍者는 敎使然也라하니 即是此篇之文이라
則本作出於藍明矣
라注+宋錢佃本은 從監本하여 作取之於藍하고 而所引蜀本도 亦作出於藍하며 宋同이라
且大戴記即用荀子文하여 亦作靑取之於藍하니 不得謂荀子本作出於藍이라하여 而作取者爲非也니라
宋建監本岐出하니 亦緣所承各異라 故王氏應麟無以定之라
순황荀況의 교육사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글이다. 인간의 지식과 재능은 선천적으로 갖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배우고 익히는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개선되고 발전한다 하였다. 그 방법은 훌륭한 스승을 선택하여 지도를 받는 한편, 《시경詩經》과 《서경書經》 등 고전 문헌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한 뒤에 예의禮義를 준수함으로써 바른 행동을 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이 배워야 하는 의의와 태도, 방법과 효과 등 교육과 관련된 제반 문제를 언급하였다.
푸른 물감은 쪽에서 취했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만들었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
注
양경주楊倞注 : 배우게 되면 재능이 그의 본성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비유하였다.
○ 노문초盧文弨 : ‘청취지어람靑取之於藍’은 송본宋本에 따른 것이다.
원각본元刻本에는 ‘청출지람靑出之藍’으로 되어 있어 ‘어於’자는 없다.
王念孫 : 《
곤학기문困學紀聞》에 “
청출지람靑出之藍이
청취지어람靑取之於藍으로 되어 있으니,
감본監本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고
건본建本이 반드시 틀린 것도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注+자주自注에 “지금 감본監本은 곧 당여정唐與政이 태주台州에서 간행한 희령熙寧 구본舊本으로, 이 또한 선본은 아니다.”라고 하고, 또 “‘청점지오태請占之五泰’의 양경 주에 ‘오태五泰는 오제五帝이다.’라 하였는데, 감본監本은 오태五泰를 오제五帝로 바꾸고 주의 내용을 삭제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는
왕씨王氏가 ‘
출出’로 되어 있는 것을 옳다고 여긴 것이다.
쪽(藍)
원각본元刻本에 ‘출지람出之藍’으로 되어 있는 것은 곧 건본建本에 근거한 것이고, 감본監本에 ‘취지어람取之於藍’으로 되어 있는 것은 《대대례기大戴禮記》를 따라 바꾼 것이다.
《순자荀子》 본문에 본디 ‘출어람出於藍’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문유취藝文類聚》 〈초부草部 상上〉과 《태평어람太平御覽》 〈백훼부百卉部 삼三〉 및 《의림意林》과 《비아埤雅》 등 이 글을 인용한 문헌들에 모두 ‘출어람出於藍’으로 되어 있고, 《신론新論》 〈숭학편崇學篇〉도 그와 같다.
저소손褚少孫이 보충한 《사기史記》 〈삼왕세가三王世家〉에 인용한 옛글에 “푸른 채색이 쪽에서 나오지만 그 본질이 쪽보다 푸른 것은 단련을 통해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곧 이 편의 글이다.
〈이로 볼 때〉 본디 ‘
출어람出於藍’으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注+송宋 전전본錢佃本은 감본監本을 따라 ‘취지어람取之於藍’으로 되어 있고 인용한 촉본蜀本도 ‘출어람出於藍’으로 되어 있으며, 송宋 공사설龔士卨의 《순자구해荀子句解》도 같다.
선겸안先謙案 : 《군서치요群書治要》에 ‘청취지람靑取之藍’으로 되어 있다.
이는 당唐나라 사람이 본 《순자荀子》 판본에 이미 ‘취取’로 된 것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대대례기大戴禮記》는 곧 《순자荀子》의 글을 인용한 것인데 거기에도 ‘청취지어람靑取之於藍’으로 되어 있으니, 《순자荀子》 판본이 ‘출어람出於藍’으로 되어 있다 하여 ‘취取’자로 된 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송본宋本‧건본建本‧감본監本은 서로 들쑥날쑥하니 이들 판본 또한 이어받은 것으로 인해 각기 달랐으며, 이 때문에 왕응린王應麟이 〈어떤 것이 옳은지〉 단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본謝本은 노교본盧校本을 따른 것인데 여기서는 그대로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