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能는 當爲耐니 古字通也라 耐는 謂堪任其事라 耐는 乃來乃代二反이라
○郝懿行曰 案楊注能耐古通이라하니 此語非是라 楊旣知爲古字通矣어늘 何必上爲能하고 下爲耐라하여 強生分別가
卽如上文二知二智도 亦是強生分別이나 古本必皆作知를 如僞爲之例也리라
若依楊注
면 則上文謂之性
의 此兩性字
를 不知當何分別
가 禮運樂記二篇
에 竝用耐字
어늘
鄭康成注에 耐는 古能字也라하니 此蓋楊注所本이라 然鄭此說은 未見所出이라
且以荀書訂之면 仲尼篇云 能耐任之라하고 又云 能而不耐任이라하여늘 楊注에 耐는 忍也라하니라
此則一句之中에 耐能兼用하니 其不以爲一字明矣라 又攷說文하니 能은 熊屬也라하고
能獸堅中
이라 故稱賢能
하고 而彊壯偁能傑也
라하며 라하고 不言爲古能字
라
然則經典用能하고 不用耐를 當依許叔重書라 康成之說은 與許不同하니 疑未可據라
先謙案 二僞二知二能은 竝有虛實動靜之分이라 知는 皆讀智라 能皆如字하며 不分兩讀이라 楊說非也라
지능이 〈접촉하는 사물과 서로〉 합치되는 일이 있는 것을 才能이라 이른다.
注
楊倞注:‘能’는 마땅히 ‘耐’로 간주해야 하니, 옛 글자에 통용하였다. 耐는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을 이른다. 耐는 〈음이〉 乃와 來, 또는 乃와 代의 반절이다.
○郝懿行:살펴보건대, 楊氏의 주에 能와 耐는 옛날에 통용했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옳지 않다. 楊氏가 이미 옛 글자에 통용한 것으로 알면서 어찌 굳이 〈두 군데의 ‘謂之能’에 대해〉 위는 ‘能’이라 하고 아래는 ‘耐’라 하여 억지로 구별하였는가.
그리고 윗글의 두 ‘知’와 두 ‘智’ 또한 억지로 구별하였으나 옛 판본에는 분명히 〈‘智’도〉 모두 ‘知’로 되어 있기를 ‘僞’가 ‘爲’로 되어 있는 경우와 같을 것이다.
만약 楊氏의 주대로라면 윗글 두 군데 ‘謂之性’의 이 두 ‘性’자를 마땅히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 모르겠다. ≪戴記(禮記)≫ 〈禮運〉과 〈樂記〉 두 편에 모두 ‘耐’자를 사용하였는데,
鄭康成(鄭玄)의 주에 “耐는 옛 ‘能’자이다.”라 하였으니, 이는 아마도 楊氏 주의 근원일 것이다. 그러나 鄭氏의 이 설은 그 출처를 알 수 없다.
〈
鄭氏의 주에〉 이미 “옛 글자가 가끔 그대로 보존된 것이 있다.”라 하고, 또 “또한 지금 잘못된 것이 있다.”
注+≪禮記≫ 〈禮運〉의 鄭玄 주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鄭氏의 생각에도 정설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荀子≫로 그 오류를 바로잡는다면 〈仲尼篇〉(7-55)에 “能耐任之(자기가 중책을 맡을 만하다.)”라 하고, 또(7-56) “能而不耐任(만약 중책을 맡을 수 없다면)”이라 하였는데, 그곳의 楊氏 주에 “耐는 ‘忍’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한 문구 속에 ‘耐’와 ‘能’를 함께 쓴 것이니, 이는 한 글자의 뜻으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또 ≪說文解字≫를 살펴보니, “能은 곰 무리의 짐승이다.”라 하고,
“곰은 들짐승으로 속이 견실하기 때문에 이 뜻을 확대하여 賢能한 것을 말하고, 곰은 강하고 힘이 세므로 재능이 걸출한 것을 말한다.”라 하였으며, 또 “耐는 간혹 ‘耏’자로 쓰기도 한다.”라 하고 옛 ‘能’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經典 속에서 〈능하다는 뜻으로는〉 ‘能’자를 쓰고 ‘耐’자를 쓰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許叔重(許愼)의 글에 의해 〈알 수 있다.〉 鄭康成의 설은 許氏와 다르니, 의심스러워 근거로 삼을 수 없다.
先謙案:두 ‘僞’자, 두 ‘知’자, 두 ‘能’자는 모두 虛와 實, 動과 靜의 구분이 있다. 知는 모두 ‘智’로 읽는다. 能은 모두 본음대로 읽으며 구분하여 두 음으로 읽지 않는다. 楊氏의 설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