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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1)

순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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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5-51 故曰 欲觀聖王之跡인댄 則於其粲然者矣라하니 後王是也
後王 近時之王也
粲然 明白之貌
言近世明王之法 則是聖王之跡也
夫禮法所興 以救當世之急이라 故隨時設敎하고 不必拘於舊聞이로되
而時人以爲君必用堯舜之道하고 臣必行禹稷之術然後可라하니 斯惑也
라하니 故荀卿深陳以後王爲法하되 審其所貴君子焉하니라
○ 劉台拱曰 後王 謂文武也
楊注非
汪中曰 史記引法後王 蓋如賦詩之斷章耳
此注承其誤하니 名爲解荀子而實汩之
王念孫曰 後王二字 本篇一見하고 不苟篇一見하고 儒效篇二見하고 王制篇一見하고 正名篇三見하고 成相篇一見하니 皆指文武而言이라
楊注皆誤
俞樾曰 劉汪王三君之說 皆有意爲荀子補弊扶偏이요 而實非其雅意也
據下文云 彼後王者 天下之君也
舍後王而道上古 譬之是猶舍己之君而事人之君也라하니라
然則荀子生於周末하니 以文武爲後王可也
若漢人則必以漢高祖爲後王하고 唐人則必以唐太祖太宗爲後王이라
設於漢唐之世 而言三代之制 是所謂舍己之君而事人之君矣
豈其必以文武爲後王乎
蓋孟子言法先王하고 而荀子言法後王 亦猶孟子言性善하고 而荀子言性惡이라
各成其是하고 初不相謀 比而同之 斯惑矣
呂氏春秋察今篇曰 上胡不法先王之治리오
非不賢也 爲其不可得而法이라하고 又曰 世易時移 變法宜矣
譬之若良醫하니 病萬變이면 藥亦萬變이니
病變而藥不變이면 鄕之壽民 今爲殤子矣리라하니라
蓋當時之論 固多如此
其後李斯相秦 廢先王之法하고 一用秦制할새 後人遂以爲荀卿罪하니 不知此固時爲之也
後人不達此義하여 於數千年後 欲胥先王之道而復之 而卒不可復하리니 吾恐其適爲秦人笑矣


그러므로 “성군의 정치행적을 살펴보려면 그들 가운데 가장 드러난 인물을 살펴보라.”고 하는 것이니, 그것은 곧 후대의 왕이다.
양경주楊倞注 : ‘후왕後王’은 가까운 시기의 왕이다.
찬연粲然’은 분명한 모양이다.
근대 현명한 군주의 법은 곧 성군의 행적이다.
대체로 예의제도가 진작되어야 그것으로 당대의 급한 상황을 구제할 수 있으므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화를 베풀고, 지난날에 들었던 이상적인 말에 굳이 구애받을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 사람들은 군주는 반드시 의 도를 적용하고 신하는 반드시 의 방법을 행한 뒤에 옳다고 여겼으니, 이는 정신이 똑바르지 않은 것이다.
공자가 “나라는 나라의 예를 이어받았으니, 〈나라가〉 무엇을 덜어내고 보탰는지를 알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순경荀卿이 후대의 왕을 본보기로 삼되 그 사람이 존귀하게 여기는 군자를 살펴볼 것을 심각하게 개진한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이 말하기를 “후대의 왕을 본보기로 삼는다는 것은, 〈후대의 왕이〉 자기와 시대적으로 가깝고 민속이 〈달라진 것도 후대 왕의 그 시기상황과〉 비슷함으로 인해 정치상의 명령이 간단명료하여 행해지기 쉽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유태공劉台拱 : ‘후왕後王’은 문왕文王무왕武王을 이른다.
양씨楊氏의 주는 틀렸다.
왕중汪中 : 《사기史記》에서 《순자荀子》의 ‘법후왕法後王’을 인용한 것은 작품에서 단장취의斷章取義한 것과 같다.
그런데 여기 주에서 그 잘못을 그대로 따랐으니, 외형은 순자荀子의 의도를 풀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덮어버린 것이다.
왕염손王念孫 : ‘후왕後王’ 두 자는 본편에 한 번 보이고, 〈불구편不苟篇〉에 한 번 보이고, 〈유효편儒效篇〉에 두 번 보이고, 〈왕제편王制篇〉에 한 번 보이고, 〈정명편正名篇〉에 세 번 보이고, 〈성상편成相篇〉에 한 번 보이는데, 모두 문왕文王무왕武王을 가리켜 한 말이다.
양씨楊氏의 주는 모두 잘못되었다.
유월俞樾 : ‘’‧‘’‧‘’ 세 사람의 설은 모두 순자荀子를 위해 폐단을 수정하고 편향된 것을 바로잡자는 데에 뜻이 있었고, 사실은 그들의 본의가 아니다.
아래 글에 의하면 “저 후대의 왕이란 천하의 군주이다.
후대의 왕을 놓아두고 오랜 옛날의 왕을 따르는 것은, 비유하자면 자기 군주를 제쳐두고 남의 군주를 섬기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 말대로라면 순자荀子나라 말기에 살았으니, 문왕文王무왕武王을 후대의 왕으로 보는 것이 옳다.
만약 나라 사람이라면 반드시 고조高祖를 후대의 왕이라 하고, 나라 사람이라면 반드시 태조太祖태종太宗을 후대의 왕이라 해야 한다.
그런데 가령 나라와 나라 세상임에도 삼대三代 제왕의 제도를 언급한다면 이것은 이른바, 자기 군주를 제쳐두고 남의 군주를 섬기는 경우이다.
나라와 나라 때 사람이〉 어찌 반드시 문왕文王무왕武王을 후대의 왕으로 여겨야겠는가.
맹자孟子가 선대의 왕을 본보기로 삼을 것을 말하고 순자荀子가 후대의 왕을 본보기로 삼을 것을 말한 것은, 이 또한 맹자孟子가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고 말하고 순자荀子가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고 말한 경우와 같다.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고 애초에 서로 의견을 상의하지 않았는데, 제삼자가 사심을 가지고 이것을 동일시한다면 이는 정신이 똑바르지 않은 것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찰금편察今篇〉에 “오늘날의 군주가 무엇 때문에 고대 제왕의 정치를 본보기로 삼지 않아야 하는가?
〈이것은 고대 제왕의 법도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을 본보기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또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발전하면 법을 바꾸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뛰어난 의원의 경우와 같으니, 병이 만 가지로 바뀌면 약도 당연히 만 가지로 바뀌어야 한다.
병이 바뀌었는데도 약이 바뀌지 않는다면, 본디 장수할 수 있었던 사람이 지금은 빨리 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체로 그 당시 사람들의 주장은 사실 일반적으로 이와 같았다.
그 뒤에 이사李斯나라 재상으로 고대 제왕의 법을 폐지하고 한결같이 나라 제도를 시행하자, 후세 사람들은 마침내 순경荀卿의 죄로 여겼고 달라진 시대에 따라 그렇게 하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후세 사람이 이와 같은 뜻을 모르고 수천 년이 지난 뒤에 고대 제왕의 정치제도를 살펴보고 그대로 수복하려 들면 마침내 수복할 수 없을 것이니, 나는 나라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기에 딱 좋지 않을까 걱정된다.


역주
역주1 孔子曰……所損益可知也 : 《論語》 〈爲政〉에 보인다.
역주2 法後王者……議卑而易行也 : 《史記》 권15 〈六國表〉 제3에 보인다.

순자집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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