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6 驗之所緣
以同異
하여 而觀其孰調
하면 則能禁之矣
리라
注
驗其所緣同異 本由物一貫이면 則不可分別이라 故定其名而別之라
今山淵平之說은 以高爲下하고 以下爲高하니 若觀其精孰得調理與否면 則能禁惑於實而亂名者也라
○郭嵩燾曰 此三惑은 仍承上言之라 用名以亂名은 則驗其所以爲名而觀其行하고
用實以亂名은 則驗其所緣以爲同異而調使平하고 用名以亂實은 則驗其制名之原而觀其所以爲辭受라
荀用此三者하여 以明諸家立言之旨하니 所以爲正名也라 此文驗之所緣無以同異는 與前文不合하니 明無字衍文이라
무엇 때문에 사물의 명칭이 같은 것이 있고 다른 것이 있는가의 원인을 고찰하여 어느 쪽이 조화로운가를 살펴본다면 그 설을 금지할 수 있을 것이다.
注
楊倞注:무엇 때문에 사물의 명칭이 같은 것이 있고 다른 것이 있는지 그 이유가 본디 사물이 동일하면 구별할 수 없으므로 그 명칭을 정해 구별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고찰한다는 뜻이다.
지금 산과 못이 똑같이 고르다는 설은 높은 것을 낮다고 하고 낮은 것을 높다고 한 것이니, 만약 그 설이 원만하고 조리가 있는지의 여부를 살펴본다면 사실을 처리하는 부분에 〈미혹되어〉 바른 명칭을 어지럽히는 것을 금지할 수 있을 것이다.
○郭嵩燾:이 세 가지 미혹된다는 것은 계속 위를 이어받아 말한 것이다. 명칭을 사용한 부분에 미혹되어 바른 명칭을 어지럽히는 것에 대해서는 명칭이 있게 된 원인을 고찰하여 그것이 행해지는 것을 살펴보고,
사실을 처리하는 부분에 〈미혹되어〉 바른 명칭을 어지럽히는 것에 대해서는 무엇 때문에 사물의 명칭이 같은 것이 있고 다른 것이 있는지 그 이유를 고찰하여 조화시켜서 고르게 하고, 명칭을 사용하는 부분에 〈미혹되어〉 사실을 어지럽히는 것에 대해서는 명칭을 제정한 원칙을 고찰하여 그들이 옳다고 인정하고 그르다고 거부하는 까닭을 살펴보아야 한다.
荀子가 이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諸家가 주장을 세운 취지를 밝혔으니, 이는 명칭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이다. 이곳 문구 ‘驗之所緣無以同異’는 앞서의 문구와 합치되지 않으니, ‘無’자는 잘못 덧붙여진 글자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