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巨涂則讓하고 小涂則殆하니 雖欲不謹이나 若云不使라
注
謂行於道涂에 大道竝行則讓之하고 小道可單行則後之니 若能用意如此면 雖欲爲不謹敬이라도 若有物制而不使之者라
言共行於道涂할새 大道可竝行則讓之하고 小道只可單行하니 則待其人過乃行也라
說文女部에 孃은 煩擾也라하니 經典無孃字하고 多以讓爲之라
文選舞賦擾攘就駕에 李善引埤蒼曰 攘은 疾行貌라하니 巨涂人所共行이라 故擾攘而不止하고 小涂人所罕由라 故危殆而不安이라
큰 길을 걸어가면 사람이 많아 소란스럽고 작은 길을 걸어가면 울퉁불퉁하여 위험하니, 아무리 신중하지 않으려 해도 그 무엇이 신중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만 같다.
注
양경주楊倞注 : ‘태殆’는 ‘근近’자의 뜻이다.
일반적으로 길을 갈 적에 앞서 간 자는 멀어지고 뒤에 오는 자는 가까이 따라온다.
길을 갈 적에 큰 길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가므로 길을 양보하고 작은 길은 혼자서만 갈 수 있으므로 뒤따라가는 것이니, 만약 마음 쓰기를 이와 같이 한다면 비록 삼가고 조심하지 않으려 하더라도 그 어떤 것이 제어하여 그렇게 할 수 없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른다.
《예기禮記》 〈유행儒行〉에 “길을 걸어갈 적에는 험난한 길은 피하고 쉬운 길의 편리함을 취하려고 다투지 않는다.[道涂不爭險易之利]”라고 하였다.
○ 왕염손王念孫 : 양씨楊氏의 설은 말이 뒤엉켜 뜻이 통할 수 없다.
나는 ‘태殆’는 ‘대待(기다리다)’자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길을 갈 적에 큰 길은 함께 갈 수 있으므로 선두를 양보하고, 작은 길은 한 사람씩만 갈 수 있으므로 앞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뒤에 비로소 간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태殆’자로 되어 있는 것은 가차자假借字일 뿐이다.
유월俞樾 : ‘양讓’은 마땅히 소란스럽다는 뜻인 ‘요양擾攘’의 ‘양攘’으로 읽어야 한다.
《설문해자說文解字》 〈여부女部〉에 “‘양孃’은 난잡하다는 뜻이다.”라 했는데, 경전經典에는 ‘양孃’자가 없고 흔히 ‘양讓’으로 대신하였다.
《예기禮記》 〈곡례편曲禮篇〉의 정현鄭玄 주에 “‘양攘’은 옛 ‘양讓’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곳에 또 ‘양讓’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문선文選》 〈무부舞賦〉의 “요양취가擾攘就駕(소란스레 말에다 마구馬具 메우고)”에 이선李善이 《비창埤蒼》을 인용하여 “‘양攘’은 빨리 가는 모양이다.”라고 하였으니, 큰 길은 사람들이 함께 가기 때문에 소란스러워 조용하지 않고, 작은 길은 사람들이 드물게 지나가기 때문에 위태로워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길이란 큰 길이나 작은 길을 막론하고 모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중하지 않으려 해도 그 무엇이 신중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만 같다.’고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