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 君子賤野而羞瘠
이라 故天子
重
이요 諸侯五重
이요 大夫三重
이요 士再重
이라
注
禮記曰 天子之棺은 四重이라 水兕革棺을 被之하되 其厚三寸이라
杝棺一
과 梓棺二
니 四者皆周
라 棺束
은 縮二衡三
이라 은 每束一
이라 柏椁以端
이니 長六尺
이라하니라
又禮器曰 天子七月而葬
하되 이라하고 鄭云 五重
은 謂抗木與茵也
라하니라
今十重은 蓋以棺椁與抗木合爲十重也라 諸侯以下는 與禮記多少不同하니 未詳也라
○郝懿行曰 十은 當作五라 古五作乂하니 與十形近易(이)譌라 上有天下者事十世의 十은 當爲七이라
然天子七重은 於古無文하니 作五或猶近之라 而檀弓云 天子之棺四重이라하고
鄭注
에 三重
이요 再重
이요 大夫一重
이요 士不重
이라하여 與此復不同
이라
若依鄭義推之면 此重數俱有加하니 亦當言天子五重이요 諸侯三重이요 大夫二重이요 士一重矣라
王引之曰 十
은 疑當作七
注+凡經傳中七十二字多互譌하니 不可枚擧라이라 禮自上以下
엔 降殺(쇄)以兩
이라 天子七重
이라 故諸侯減而爲五
하고 大夫減而爲三也
라 楊注非
라
君子는 미개한 것을 천하게 여기고 박한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므로 천자의 棺椁은 일곱 겹이고 제후는 다섯 겹이고 大夫는 세 겹이고 士는 두 겹이다.
注
楊倞注:≪禮記≫ 〈檀弓 上〉에 “천자의 널은 네 겹이다. 〈첫 번째 것은〉 무소가죽과 들소가죽으로 널 안팎을 입히는데, 그 두께는 세 치이다.
〈다음 것은〉 피나무로 만든 널이 하나이고 〈그 다음은〉 개오동나무로 만든 두 개의 널로 〈屬棺과 大棺이니,〉 이 네 겹의 널은 모두 상하와 사방이 막혀 있다. 널을 묶을 때는 〈가죽 끈으로〉 세로로 두 줄, 가로로 세 줄을 묶는다. 衽은 널의 〈몸통과 덮개가 접촉한 부분에〉 끈이 묶인 곳마다 하나씩 끼워 넣는다. 측백나무로 만드는 外椁은 밑동을 쓰는 것이니, 길이는 여섯 자이다.”라 하였다.
또 ≪禮記≫ 〈禮器〉에 “천자가 죽으면 7개월이 지난 뒤에 장사를 치르는데 〈널 밑에 까는 茵과 위에 덮는 抗木은 각각〉 다섯 겹이고 雲翣은 여덟 개이다.”라 하고, 鄭玄이 “五重은 抗木과 茵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여기에 十重이라 한 것은 어쩌면 棺椁과 抗木을 합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諸侯 이하는 ≪禮記≫의 내용과 그 숫자가 같지 않으니,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郝懿行:十은 마땅히 ‘五’로 되어야 한다. 옛 글자에는 ‘五’를 ‘乂’로 썼으니, ‘十’과 모양이 가까워 잘못되기가 쉽다. 위에 보이는 ‘有天下者事十世’의 ‘十’은 마땅히 ‘七’로 되어야 한다.
그러나 천자의 棺椁이 일곱 겹이라는 것은 옛 문헌에 그와 같은 문구가 없으니, ‘五’가 되는 것이 어쩌면 이치에 거의 맞을 것이다. 하지만 ≪禮記≫ 〈檀弓〉에 “천자의 널은 네 겹이다.”라 하고,
鄭玄의 주에 “諸公은 세 겹이고 諸侯는 두 겹이고 大夫는 한 겹이고 士는 겹으로 된 널을 쓰지 않는다.”라 하여 이것과도 같지 않다.
만약 鄭玄의 뜻에 의해 헤아려본다면 이곳의 겹으로 된 널의 숫자가 모두 더 보태진 점이 있으니, 또한 마땅히 ‘天子五重 諸侯三重 大夫二重 士一重’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王引之:
十은 아마도 마땅히 ‘
七’로 되어야 할 것이다.
注+모든 經傳 속에 ‘七’과 ‘十’ 두 자가 서로 잘못된 경우가 많으니, 그 사례를 하나하나 들어서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예법에 위에서 내려올 때는 숫자를 둘씩 줄인다. 천자가 일곱 겹이므로 제후는 줄여 다섯이 되고
大夫는 줄여 셋이 되는 것이다.
楊氏의 주는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