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身勞而心安이면 爲之하고 利少而義多면 爲之라
注
言事大國暴亂之君하여 違道而通은 不如事小國之君하여 順行其道也라
如本篇上文及不苟篇榮辱篇儒效篇皆有之하니 可以相證이라
俞樾曰 荀子之意는 以爲事亂君則不順矣요 事窮君則不通矣라
然與其事亂君而通으론 不如事窮君而順이니 正上文身勞而心安이면 爲之하고 利少而義多면 爲之之意라
郭嵩燾曰 通則言聽計從하여 恣其所欲爲하고 順則委身以從之而已라
文義在亂君窮君之分하니 亂君爲暴而窮君不能爲暴者也니라
先謙案 仕能得君曰通이니 仲尼篇云 以事君則必通이라하니라
몸은 수고롭더라도 마음이 편안하다면 행하고, 이익은 적더라도 도의道義가 많다면 행한다.
난폭한 군주를 섬기면서 벼슬길이 형통한 것이 역경에 처한 군주를 섬기면서 도의를 따르는 것보다 못하다.
注
양경주楊倞注 : ‘궁군窮君’은 강자에게 위협을 받는 작은 나라의 군주이다.
대국의 난폭한 군주를 섬겨 도의를 어기면서 형통하는 것은 약소국의 군주를 섬기면서 도의를 따라 행하는 것보다 못함을 말한 것이다.
○ 고천리顧千里 : ‘궁窮’‧‘순順’ 두 자는 아마도 분명히 서로 어긋나게 맞물린 글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순군順君’‧‘난군亂君’은 대구이고 ‘이통而通’‧‘이궁而窮’도 대구이다.
《순자荀子》에는 늘 ‘통通’과 ‘궁窮’을 대구로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본편本篇의 윗글과 〈불구편不苟篇〉‧〈영욕편榮辱篇〉‧〈유효편儒效篇〉에도 모두 있으니, 그 사례를 통해 증명할 수 있다.
그런데 양경楊倞의 주는 서로 어긋나게 맞물려 쓴 것을 피상적으로 글자만 보고 뜻을 설명하였으니, 잘못되었다.
유월俞樾 : 순자荀子의 생각은 ‘난폭한 군주를 섬기면 순탄하지 않고, 곤궁한 군주를 섬기면 형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난폭한 군주를 섬겨 형통하느니보다는, 곤궁한 군주를 섬겨 순탄한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니, 이는 곧 윗글의 ‘몸은 수고롭더라도 마음이 편안하다면 행하고, 이익은 적더라도 도의가 많다면 행한다.’는 뜻이다.
만약 고씨顧氏가 교감한 대로 따른다면 완전히 그 본지를 잃게 된다.
그런데 왕씨王氏가 그 설을 채택하여 《순자잡지荀子雜志》 부록에 넣었으니, 잘못된 것이다.
곽숭도郭嵩燾 : ‘통通’은 말하면 들어주고 계책을 올리면 따라주어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행할 수 있다는 뜻이고, ‘순順’은 몸을 맡겨 상황에 순응할 뿐인 것이다.
이 글 뜻은 난군亂君과 궁군窮君을 구분하는 데에 있으니, 난군亂君은 폭정을 행하지만 궁군窮君은 폭정을 행할 수 없는 사람이다.
선겸안先謙案 : 벼슬하여 군주의 신임을 얻는 것을 ‘통通’이라 하니, 〈중니편仲尼篇〉에 “이사군즉필통以事君則必通(그 방법으로 군주를 섬기면 반드시 영달한다.)”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