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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4)

순자집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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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5-76 故齊之 楚之莊蹻 秦之 燕之 是皆世俗之所謂善用兵者也니이다
田單 齊襄王臣安平君也 史記 莊蹻者 楚莊王苗裔 楚威王使爲將하여 將兵循江而上하여 略蜀黔中以西
蹻至滇池하니 方三百里 地肥饒數千里어늘 以兵威定屬楚
欲歸報 會秦擊奪楚巴黔中郡하여 道塞不通이라 因還하여 以其衆하고 變服하여 從其俗焉이라
衛鞅 秦孝公臣이니 封爲商君者也 繆蟣 未聞也


대체로 나라의 전단田單, 나라의 장교莊蹻, 나라의 위앙衛鞅, 나라의 목기繆蟣는 모두 세속의 이른바 용병을 잘했던 자들입니다.
양경주楊倞注전단田單 양왕襄王의 신하 안평군安平君이다. ≪사기史記≫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에 “장교莊蹻 장왕莊王의 후예이다. 위왕威王이 그를 장수로 임명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장강長江을 따라 올라가 촉군蜀郡검중黔中 서부지역을 평정하게 하였다.
장교莊蹻의 군대가 전지滇池에 당도해보니, 그곳은 사방 삼백 리나 되었고 주변에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한 땅 수천 리가 있으므로 군대의 위력으로 그곳을 평정하여 나라에 귀속시켰다.
그는 조정으로 돌아와 왕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려고 하였으나 때마침 나라가 나라의 파군巴郡검증군黔中郡을 공격하여 빼앗아가 도로가 막혀 통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도로 돌아가 그의 군대에 의해 나라의 왕이 되고 복장을 바꾸어 그 지역의 풍속을 따랐다.”라고 하였다.
위앙衛鞅 효공孝公의 신하이니, 상군商君으로 봉해진 사람이다. 목기繆蟣는 누구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역주
역주1 田單 : 齊나라 사람이다. 燕나라가 齊나라를 공격하여 70여 개의 성을 함락시키고 莒‧卽墨 두 성만 아직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을 때 卽墨의 성 안 사람들에 의해 장군으로 추대되어 反間計를 써서 燕나라의 명장 樂毅를 교체시키고 火牛陣으로 燕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여 잃었던 70여 개의 성을 모두 탈환하였다. 이 공으로 安平君에 봉해졌다.
역주2 衛鞅 : 곧 商鞅이다. 성은 公孫이고 이름은 鞅이다. 전국 때 衛나라 군주의 후예이므로 衛鞅이라 부르기도 한다. 일찍이 秦나라에서 재상 겸 장군의 지위인 大良造에 임용되어 국법을 개정하였으며, 魏나라와의 전쟁에서 여러 번 전공을 세워 商邑에 봉해졌고 이로 인해 商君이라 불린다. 그가 전쟁할 때는 막역한 옛 벗을 속이는 방법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였다.
역주3 繆蟣(목기) : 燕나라의 명장 樂毅를 달리 표기한 것이다. 繆과 樂, 蟣와 毅는 고대의 疊韻으로, 서로 통한다. 疊韻은 複音詞가 공통의 韻母를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역주4 : 저본의 원주에 “王은 原本에 ‘至’로 되어 있으나, ≪史記≫ 〈西南夷列傳〉에 의거하여 고쳤다.[王 原本作至 據史記西南夷列傳改]”라고 하였다.

순자집해(4) 책은 2022.08.3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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