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5 樹之而五穀蕃焉
하며 草木殖焉
하고 禽獸育焉
하며 生則立焉
하고 死則入焉
이라 多其功而不
이라
注
○ 劉台拱曰 不息은 韓詩外傳春秋繁露山川頌說苑臣術篇엔 竝作不言이라
言與息
은 形聲皆不相近
하니 若本是言字
면 無緣誤爲息
이라 息
은 當爲
이라 (惪)[悳]
은 古德字
라
繫辭傳曰 有功而不德이 是也라 韓詩外傳春秋繁露說苑엔 作不言이나 意與不德同이라 俗書(惪)[悳]字作惪하니 形與息相似而誤라
大戴禮公冠篇靡不蒙(惪)[悳]이 今本誤作靡不息하니 是其證也라 家語困誓篇에 作多其功而不意어늘 王肅曰 功雖多而無所意也라하니 兩意字도 亦(惪)[悳]字之誤라
家語本於荀子하니 則荀子之本作(惪)[悳]明矣라 太平御覽地部二엔 正引作多其功而不德이라
그 위에 작물을 심으면 오곡五穀이 무성하며, 초목이 그 속에서 생장하고 온갖 짐승이 그 속에서 생육하며, 살아서는 그 위에 서 있고 죽어서는 그 속에 들어간다. 〈흙은〉 이처럼 그 공이 많은데도 스스로 공덕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注
○ 유태공劉台拱:불식不息은 ≪한시외전韓詩外傳≫․≪춘추번로春秋繁露≫ 〈산천송山川頌〉․≪설원說苑≫ 〈신술편臣術篇〉에는 모두 ‘불언不言’으로 되어 있다.
왕인지王引之:언言과 식息은 모양과 소리가 모두 서로 비슷하지 않으니, 만약 본디 ‘언言’자였다면 ‘식息’으로 잘못될 리는 없다. ‘식息’은 마땅히 ‘덕惪’이 되어야 한다. ‘덕惪’은 옛 ‘덕德’자이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유공이부덕有功而不德(공이 있더라도 은덕으로 여기지 않는다.)”이라 한 것이 이것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춘추번로春秋繁露≫․≪설원說苑≫에는 ‘불언不言’으로 되어 있으나, 뜻은 ‘부덕不德’과 같다. 통속적인 서체는 ‘덕惪’자가 ‘덕惪’으로 되어 있으니, 모양이 ‘식息’과 서로 비슷하여 잘못된 것이다.
≪대대례기大戴禮記≫ 〈공관편公冠篇〉의 ‘미부몽덕靡不蒙惪’이 지금 판본에는 ‘미부식靡不息’으로 잘못되어 있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곤서편困誓篇〉에 ‘다기공이부의多其功而不意’로 되어 있는데, 왕숙王肅이 말하기를 “공수다이무소의야功雖多而無所意也(공이 비록 많더라도 은덕으로 여기는 일이 없다.)”라 하였으니, 이 두 ‘의意’자도 ‘덕惪’자의 잘못이다.
≪공자가어≫는 ≪순자荀子≫에 뿌리를 두었으니, ≪순자≫가 본디 ‘덕惪’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지부地部2≫에는 ≪순자≫를 바르게 인용하여 ‘다기공이부덕多其功而不德’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