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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4)

순자집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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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 하여 克蔡하고 獲蔡侯
公孫子 齊相也 未知其名이라 孟嘗君客有公孫成하니 豈後爲齊相乎 或曰 公孫名忌라하니라
子發 楚令尹이니 未知其姓이라 戰國策 莊辛諫楚襄王曰 蔡聖侯南遊乎高陂하고 北陵乎巫山하며
左枕幼妾하고 右擁嬖女하여 馳騁乎高蔡之閒而不以國家爲事하여 不知夫子發方受命于宣王하여以朱絲而見之라하니라
史記 蔡侯齊爲楚惠王所滅이라하여늘 莊辛云宣王하니 與史記不同이라
○盧文弨曰 案楚策 左枕作左抱 蔡無聖侯하니 謂當作靈侯 或者古通稱歟
鮑彪云 昭十一年 楚子誘蔡侯般하여 殺之於申이라하고 經傳不書子發하니 蓋使子發召之
楚子 靈王이라 若宣王인댄 蔡滅八十年矣 淮南道應訓 子發伐蔡하여 踰之하니 宣王郊迎이라하고
라하니라 今案 鮑吳之說 以爲楚靈王이라 然誘之與伐 其事不同하니 闕疑可也
王念孫曰 蔡在楚北하고 非在楚西하니 不得言西伐蔡 子匠反이라 西 當爲而 言子發將兵而伐蔡也


공손자公孫子가 말하였다. “〈나라의〉 자발子發이 군대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가 나라를 공격하여 나라를 점령하고 채후蔡侯를 포로로 잡았다.
양경주楊倞注공손자公孫子나라 재상이니, 그 이름은 알 수 없다. ≪후어後語≫에 맹상군孟嘗君식객食客 중에 공손성公孫成이 있으니, 혹시 나중에 나라 재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혹자는 “공손公孫의 이름은 이다.”라고 하였다.
자발子發나라 영윤令尹이니, 그 성은 알 수 없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 “장신莊辛 양왕襄王에게 간하기를 ‘ 성후聖侯가 남쪽으로는 고피高陂를 유람하고 북쪽으로는 무산巫山을 올라갔으며,
왼편에는 나이 어린 첩을 끼고 오른편에는 총애하는 여인을 껴안고서 이들과 함께 고채高蔡 등지에서 말을 달리고 국가의 정사를 돌아보지 않으면서 장차 저 자발子發이 곧 선왕宣王의 명령을 받아 붉은 밧줄로 자기를 결박하여 그의 왕에게 바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라 했다.”라고 하였다.
사기史記≫ 〈관채세가管蔡世家〉에 의하면 채후蔡侯 혜왕惠王에게 멸망되었다고 하였는데, 장신莊辛은 ‘선왕宣王’이라고 하였으니, ≪사기史記≫의 내용과는 같지 않다.
노문초盧文弨:살펴보건대,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 ‘좌침左枕’은 ‘좌포左抱’로 되어 있다. 나라에는 성후聖侯가 없으니, 오사도吳師道는 “마땅히 ‘영후靈侯’로 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혹시 옛날에 이 둘을 통칭했는지 모르겠다.
포표鮑彪가 말하기를 “≪춘추春秋≫에 소공昭公 11년에 ‘초자楚子채후蔡侯 을 유인하여 땅에서 죽였다.’고 하고, 경전經傳에는 자발子發을 기록하지 않았으니, 아마도 자발子發을 보내 그를 불렀을 것이다.
초자楚子영왕靈王이다. 선왕宣王이라 한다면 〈맞지 않으니 그가 살았던 시기는〉 나라가 멸망한 지 80년 이후이다.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에 ‘자발벌채子發伐蔡 유지踰之 선왕교영宣王郊迎(자발子發나라를 공격하여 승리하고 돌아오니, 선왕宣王이 직접 교외로 나가 그를 영접하였다.)’이라 하고,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閒訓〉에 또 ‘위왕威王에게 죄를 얻었다.’고 한 것은 모두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살펴보건대, 포씨鮑氏오씨吳氏의 설은 〈선왕宣王은〉 영왕靈王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인하였다는 것과 공격하였다는 것은 그 일이 같지 않으니, 의문스러운 것을 당분간 보류하여 두는 것이 좋겠다.
왕염손王念孫나라는 나라 북쪽에 있고 나라 서쪽에 있지 않으니, ‘서쪽으로 가 나라를 공격하였다.[서벌채西伐蔡]’라고 말할 수 없다. 은 〈그 음이〉 의 반절이다. ‘西’는 마땅히 ‘’로 되어야 한다. 자발子發이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를 공격한 것을 말한다.


역주
역주1 公孫子 : 猪飼彦博의 ≪荀子補遺≫에 “이 章의 첫머리에 公孫子의 말을 거론한 다음 ‘譏之曰’로 뒤를 이어 반박하였는데, 이는 ≪韓非子≫ 〈難埶篇〉에서 첫머리에 愼子의 말을 거론한 다음 ‘愼子曰’로 뒤를 이어 질문을 꺼낸 것과 그 체제가 정확히 같으니, 公孫子와 대면하여 토론한 것은 아니다. 公孫子는 곧 그 사람이 저술한 책 이름이다. ≪漢書≫ 〈藝文志〉의 儒家에 ≪公孫尼子≫ 28편이 있고 그 주에 ‘七十子의 제자이다.’라고 하였으니, 아마도 이 책일 것이다. 楊倞은 아래 章의 ‘說齊相’ 문구를 이 章으로 잘못 연결하여 한 章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公孫子가 齊나라 재상으로서 荀子와 같은 시대 사람으로 알고 孟嘗君의 식객 公孫成일 것으로 의심하면서 그 사람이 荀子의 이전 시대 인물이라는 것을 몰랐다.”라고 하였다.
역주2 子發將西伐蔡 : 子發은 楚나라의 大司馬 景舍이다. 王念孫의 주에 “蔡나라는 楚의 북쪽에 있고 서쪽에 있지 않으므로 ‘西伐蔡’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西’는 마땅히 ‘而’로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于鬯은 “蔡나라는 高蔡이다. ≪戰國策≫ 〈楚策〉에 나오는 것으로, 이는 분명히 별개의 한 蔡나라이고 蔡仲의 후손이 州來로 옮겨간 蔡나라는 아니다. 이 ‘西’자를 볼 때 충분히 그 근거가 된다. 高蔡의 蔡나라는 실제로 楚나라의 서남쪽에 있었으니, 이 ‘西’자는 분명히 오자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王天海는 “蔡는 高蔡‧湖南‧湖北의 접경에 있었던 나라로서 河南‧上蔡의 蔡는 아니다. 于氏의 설이 옳고 王氏 설은 틀렸다.”라고 하였다.
역주3 後語 : ≪春秋後語≫의 약칭이다. 晉나라 孔衍(268~320)과 唐나라 盧藏用(?~약714)이 저술한 두 종류가 있는데, 여기서는 盧藏用의 것으로 보인다.
역주4 [與之] : 저본에는 ‘與之’가 없으나, ≪戰國策≫ 〈楚策〉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5 [己] : 저본에는 ‘己’가 없으나, ≪戰國策≫ 〈楚策〉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6 吳師道 : 1283~1344. 元나라 婺州 蘭溪 사람으로, 자는 正傳이다.
역주7 鮑彪云……皆失考也 : 鮑彪는 宋나라 사람으로, 자는 文虎이다. 高宗 때 司封員外郞을 지냈다. 史學에 조예가 깊었으며 ≪戰國策注≫를 저술하였다. ‘昭十一年’부터 ‘皆失考也’까지 ≪戰國策≫ 〈楚策〉의 ‘繫己以朱絲而見之也’의 주석이다.

순자집해(4) 책은 2022.08.3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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