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상탕商湯이 걸왕桀王을 추방한 것은 그를 명조鳴條에서 추격했을 때가 아니고, 주周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토벌한 것도 갑자일甲子日 아침 결전을 벌인 뒤에 그를 이긴 것이 아니다. 모두 이전부터 〈인의仁義를〉 행하고 〈정사를〉 잘 다스린 것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인의仁義의 군대이다.
牧野誓師圖
注
양경주楊倞注:전행소수前行素修는 이전에 이미 〈인의仁義를〉 행하고 평소에 이미 〈정사를〉 잘 다스린 것을 이른다. 행行은 본음대로 읽는다.
역주
역주1鳴條 :
湯王이 桀王을 물리친 지방으로, 高侯原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山西 運城縣 安邑鎭 북쪽이라는 설이 있다.
역주2甲子之朝 :
武王이 지금의 河南 淇縣 서남지역인 牧野에서 商나라를 공격하여 승리한 시기를 말한 것으로, ≪書經≫ 〈牧誓〉의 “갑자일 날이 밝았다. 왕께서 아침에 商나라 교외 牧野에 이르러 맹세하였다.[時甲子昧爽 王朝至于商郊牧野 乃誓]”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 갑자일은 ≪史記≫ 〈周 本紀〉에 周 武王 12년 2월로 되어 있는데, 蔡沈의 ≪集傳≫에는 2월 4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中西歷日對照表≫에 의하면 周 武王 6년(B.C.1116) 2월 5일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