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賈誼書傅職篇云 明僩雅以道之文이라하고 又道術篇云 容志審道謂之僩이요 反僩爲野라하니 此以僩與陋相對로 義亦合이라
盧疑僩當爲嫺雅之義라하여 引賈誼書傅職篇文하니 義亦相近이나 而非本義라
今詳賈子之僩爲假借요 荀子之僩爲本義니 何以明之오
證以修身篇云 多聞曰博이요 少聞曰淺이요 多見曰閑이요 少見曰陋컨대 又以閑陋相儷라
修身篇多見曰閑이요 少見曰陋라하여 閑與陋對文하니 是其證이라
注
양경주楊倞注 : ‘한僩’은 ‘한撊’과 같으니, 엄숙하다는 ‘맹猛’자의 뜻이다.
《방언方言》에 “진晉 지방과 위魏 지방 등지에서는 엄숙한 것을 말할 때 ‘한撊’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누자아차한陋者俄且僩’은 고루한 사람도 갑자기 엄숙해져 장중한 태도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오淇奧〉에 “슬혜한혜瑟兮僩兮(태도가 장중하고 엄숙함이여)”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에 “‘한僩’은 관대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한僩’의〉 음은 하下와 판板의 반절反切이다.
○ 노문초盧文弨 : 양씨楊氏 주의 ‘한撊’자는 송본宋本에 ‘한憪’으로 되어 있다.
이제 원각본元刻本을 따랐는데 이는 《방언方言》의 내용과 맞다.
살펴보건대, 이 주의 내용은 매우 일관성이 없다.
아마도 ‘한僩’은 마땅히 ‘한아嫺雅’의 뜻이 되어야 옳을 듯하다.
《가의신서賈誼新書》 〈부직편傅職篇〉에 “명한아이도지문明僩雅以道之文(고상함을 밝히기를 도리의 문文으로써 한다.)”이라고 하고, 또 〈도술편道術篇〉에 “용지심도위지한容志審道謂之僩 반한위야反僩爲野(뜻이 넉넉하고 도를 살피는 것을 고상하다 이르고, 고상의 반대는 촌스러운 것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한僩’과 ‘누陋’를 서로 짝을 맞춘 것으로서 뜻이 또한 부합된다.
노문초盧文弨 : 양씨楊氏 주의 ‘누자아차한陋者俄且僩’ 위에 마땅히 ‘혹왈或曰’ 두 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학의행郝懿行 : 양씨楊氏 주의 앞 설은 잘못되었다.
나중 설은 《시경詩經》의 “슬혜한혜瑟兮僩兮”와 정현鄭玄이 “‘한僩’은 관대하다는 뜻이다.”라 한 것을 인용하였는데, 이 설은 옳다.
노씨盧氏가 ‘한僩’은 마땅히 ‘한아嫺雅’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의심하여 《가의신서賈誼新書》 〈부직편傅職篇〉의 글을 인용하였는데, 뜻이 또한 서로 비슷하긴 하지만 근본적인 뜻은 아니다.
이제 살펴보면 《가자신서賈子新書》의 ‘한僩’은 가차假借한 것이고 《순자荀子》의 ‘한僩’은 근본 뜻인데 〈가차자假借字로〉 어떻게 밝히겠는가.
‘누陋’는 협소하다는 뜻이고, ‘한僩’은 관대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僩’과 ‘누陋’로 서로 짝을 맞춘 것이다.
〈수신편修身篇〉의 “많이 들은 것을 ‘박博’이라 말하고, 적게 들은 것을 ‘천淺’이라 말하고, 많이 본 것을 ‘한閑’이라 말하고, 적게 본 것을 ‘누陋’라 말한다.”라 한 것으로 살펴보면, 또 ‘한閑’과 ‘누陋’로 서로 짝을 맞췄다.
‘한閑’은 한가로운 것을 말하니, 이는 곧 ‘한僩’을 관대하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수신편修身篇〉에 “많이 본 것을 ‘한閑’이라 말하고, 적게 본 것을 ‘누陋’라 말한다.”라고 하여 ‘한閑’과 ‘누陋’를 짝을 맞췄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양씨楊氏의 나중 설은 ‘
한僩’을 관대하다는 뜻이라고 하였으니, 본의에 가깝다.
注+진씨陳氏의 설도 그와 대략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