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不
은 謂無曲折也
라 禮記曰
이라하니라 淸廟之歌
는 謂工以樂歌淸廟之篇也
라
一人倡하고 三人歎은 言和之者寡也라 縣一鍾은 比於編鍾爲簡略也라 尙拊之膈은 未詳이라
或曰 尙은 謂上古也요 拊는 樂器名이요 膈은 擊也니 卽所謂戛擊鳴球하고 搏拊琴瑟也라하니라
尙古樂은 所以示質也라 揚子雲長楊賦曰 拮膈鳴球라하여늘 韋昭曰 古文膈爲擊이라하니라
或曰 膈은 當爲搏이니 大戴禮에 作搏이라 拊는 一名相이니 禮記曰 治亂以相이라하니라
拊는 所以輔樂이요 相도 亦輔之義라 書曰 搏拊琴瑟이라하여늘 孔安國曰 搏拊는 以韋爲之하여 實之以穅하니 所以節樂也라하고
周禮에 大祭祀엔 登歌令奏擊拊라하니라 司馬貞曰 拊鬲은 謂縣鍾格也라 不擊其鍾而拊其格은 不取其聲하여 示質也라하니라
은 鄭玄云 朱絃
은 練朱絃也
니 練則聲濁
하고 越
은 瑟底孔也
니 所以發越其聲
이라
故謂之越이라 疏通之하여 使聲遲也라하니라 史記엔 作洞越이라 或曰 膈은 讀爲戛也라하니라
○盧文弨曰 不文은 大戴禮史記엔 皆作不反이라 觀注意에 此亦似本作不反하니 文字疑誤라
郝懿行曰 樂論篇에 以拊鞷與鞉柷椌楬相儷하니 則皆樂器名也라 拊者는 以韋爲之하여 實以穅이라
膈은 彼作鞷하여 其字從革하니 竊疑亦拊之類라 不得依此注以膈爲擊也라
若長楊賦之拮膈鳴球는 則又借拮膈爲戛擊이어늘 楊注爲誤引矣라 以此互相訂正하면 則此當縣之一鍾句하고 尙拊膈句니 文誤倒耳라
尙者는 上也라 鍾聲宏大하니 言不貴彼而上此聲之近質者也라
先謙案 不文은 當作不反이니 盧說是也라 大戴禮에 鍾作罄하니 與磬同이라 拊膈은 作拊搏하고 無之字라
史記에 亦無하니 明此之字衍이라 尙書大傳曰 古者帝王이 升歌淸廟之樂할새 大琴練絃達越하고 大瑟朱絃達越이라하니라
注
楊倞注:不反은 〈소리가〉 곡절이 없는 것을 이른다. ≪禮記≫ 〈間傳〉에 “斬衰之哭 若往而不反(斬衰服을 입은 자의 곡소리는 한 호흡으로 곡하여 숨이 찰 때까지 소리를 낸다.)”이라 하였다. 淸廟之歌는 樂工이 〈淸廟〉편을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것을 이른다.
한 사람이 선창하고 세 사람이 후렴을 따라 부른다는 것은 화답하는 사람이 적은 것을 말한다. 종 하나를 걸어놓은 것은 編鍾에 비해 간소한 것이다. 尙拊之膈은 알 수 없다.
혹자는 “尙은 상곳적을 이르고 拊는 악기 이름이고 膈은 친다는 뜻이니, 곧 〈≪書經≫ 〈虞書 益稷〉의〉 이른바 ‘戛擊鳴球 搏拊琴瑟(鳴球를 치고 拊를 두드리며 거문고와 비파를 탄다.)’과 같은 경우이다.”라 하였다.
옛 음악을 숭상하는 것은 소박함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이다. 揚子雲(揚雄)의 〈長楊賦〉에 “拮膈鳴球(鳴球를 친다.)”라 하였는데, 韋昭가 “옛 글자에서 膈은 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혹자는 “膈은 마땅히 ‘搏’으로 되어야 하니, ≪大戴禮記≫에는 ‘搏’으로 되어 있다. 拊는 일명 ‘相’이니, ≪禮記≫ 〈樂記〉에 ‘治亂以相(相으로 악곡의 마지막 장을 조절한다.)’이라 했다.”라고 하였다.
拊는 연주하는 음악을 돕는 것이고, 相도 돕는다는 뜻이다. ≪書經≫ 〈虞書 益稷〉에 “搏拊琴瑟(拊를 두드리며 거문고와 비파를 탄다.)”이라 하였는데, 孔安國이 “搏拊는 가죽으로 만들어 그 안에 왕겨를 채워 넣은 것이니, 음악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다.”라 하였다.
≪周禮≫ 〈春官 大司樂〉에 “大祭祀 登歌令奏擊拊(큰 제사에는 〈소경 악사를 인솔하여〉 마루에 올라 노래할 때 拊를 치는 것으로 시작을 알리는 명령으로 삼는다.)”라 하였다. 司馬貞의 ≪史記索隱≫에 “拊鬲은 종을 매다는 받침대이다. 종을 치지 않고 그 받침대를 두드리는 것은 〈우렁찬〉 종소리를 취하지 않아 음악이 소박함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라 하였다.
朱絃疏越은 鄭玄이 “朱絃은 삶아 익힌 붉은 絃이니 삶으면 그 소리가 둔탁하고, 越은 비파의 밑구멍이니 그 소리가 퍼지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越’이라고 말한 것이다. 구멍을 통해 소리가 퍼져 그 소리가 느려지게 만드는 것이다.”라 하였다. 〈通越이〉 ≪史記≫ 〈禮書〉에는 ‘洞越’로 되어 있다. 혹자는 “膈은 ‘戛’로 읽어야 한다.”라 하였다.
○盧文弨:‘不文’은 ≪大戴禮記≫와 ≪史記〉에는 모두 ‘不反’으로 되어 있다. 〈楊氏〉 주의 뜻을 살펴볼 때 이곳 또한 본디 ‘不反’으로 되어 있었을 것 같으니, 글자가 잘못된 것으로 의심된다.
郝懿行:〈樂論篇〉에 ‘拊鞷’ 및 ‘鞉柷’, ‘椌楬’은 서로 대를 맞췄으니, 모두 악기 이름이다. 拊는 가죽으로 만들어 그 안에 왕겨를 채운 것이다.
膈은 저쪽 〈樂論篇〉에 ‘鞷’으로 되어 있어 그 글자가 革이 形符가 되니, 아마도 이 또한 ‘拊’의 일종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의 〈楊氏〉 注대로 ‘膈’을 ‘擊’의 뜻이라 할 수 없다.
〈長楊賦〉의 ‘拮膈鳴球’는 또 ‘拮膈’이 ‘戛擊’의 假借로 된 것인데, 楊氏의 주는 그것을 잘못 인용하였다. 이것을 가지고 이리저리 맞춰 바르게 고친다면 이 글은 마땅히 ‘縣之一鍾’이 한 구이고 ‘尙拊膈’이 한 구가 되어야 하니, 글자 위치가 잘못 뒤바뀐 것이다.
尙은 ‘上’의 뜻이다. 종은 소리가 웅장하고 큰 것이니,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순진하고 소박한 것에 가까운 이 악기 소리를 으뜸으로 여긴 것을 말한다.
先謙案:‘不文’은 마땅히 ‘不反’으로 되어야 하니, 盧氏의 설이 옳다. ≪大戴禮記≫ 〈禮三本〉에는 ‘鍾’이 ‘罄’으로 되어 있으니, 이것은 ‘磬’과 같다. ‘拊膈’은 ‘拊搏’으로 되어 있고 ‘之’자는 없다.
≪史記≫에도 없으니, 이 ‘之’자는 잘못 덧붙여졌다는 것이 분명하다. ≪尙書大傳≫에 “古者帝王 升歌淸廟之樂 大琴練絃達越 大瑟朱絃達越(옛날에 제왕이 太廟에 올라가 〈淸廟〉 악장을 노래할 적에 大琴은 삶아 익힌 絃의 소리가 거문고 밑구멍으로 퍼져나가 느리고, 大瑟은 붉은 현의 소리가 비파 밑구멍으로 퍼져나가 느리다.)”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