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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6)

순자집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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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21 子夏貧하여 이라
人曰 子何不仕오하니
曰 諸侯之驕我者 吾不爲臣하고 大夫之驕我者 吾不復見이라 柳下惠與後門者同衣而不見疑하니 非一日之聞也
柳下惠 魯賢人이니 公子展之後 名獲이요 字禽이라 居於柳下하고 諡惠 季其伯仲也
後門者守後門하여 至賤者
子夏言昔柳下惠衣之敝惡與後門者同이나 時人尙無疑怪者라하니
言安於貧賤하여 渾迹而人不知也 非一日之聞 言聞之久矣
○盧文弨曰 案柳下惠一條 不當蒙上文이라
與後門同衣而不見疑 蓋即毛詩巷伯篇故訓傳所云 不逮門之女 而國人不稱其亂也 非一日之聞 言素行爲人所信이라
王念孫曰 案鍾山札記 又引呂氏春秋長利篇云 戎夷違齊如魯어늘 天大寒而後門
高誘注 後門 日夕하여 門已閉也라하고 韓非子外儲說左下云 暮而後하니라하니라


자하子夏는 가난해 입은 옷이 메추라기를 매달아놓은 깃과 같았다.
어떤 사람이 “당신은 어찌하여 벼슬하지 않는가?”라고 하니,
자하子夏가 “제후로서 나에게 교만을 피우는 자에 대해서는 나는 그의 신하가 되지 않고, 대부大夫로서 나에게 교만을 피우는 자에 대해서는 나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는다. 유하혜柳下惠는 성문을 닫은 뒤에 늦게 온 여인과 옷을 함께 걸쳤어도 의심받지 않았으니, 이는 〈그가 고결하다는 명성을 얻은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경주楊倞注유하혜柳下惠나라의 현인賢人이니, 공자公子 의 후손이다. 이름은 이고 자는 이다. 유하柳下에서 살았고 시호가 이다. 그 형제의 서열로는 막내였다.
子夏子夏
후문後門이란 성곽 후문의 문지기인 군자로서 신분이 매우 미천한 사람이다.
자하子夏가 “옛날 유하혜柳下惠가 입은 옷이 너덜너덜하여 성곽 후문의 문지기와 같았으나 당시 사람들 가운데 오히려 이상하게 여긴 사람은 없었다.”라고 말한 것이니,
가난하고 미천한 것을 편안하게 여겨 세속에 자취를 숨겼는데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비일일지문非一日之聞은 그 말을 들은 지 오래되었다는 말이다.
노문초盧文弨:살펴보건대, 유하혜柳下惠 한 조목은 윗글과 연결하는 것이 옳지 않다.
여후문동의이불견의與後門同衣而不見疑’는 대개 곧 ≪모시고훈전毛詩故訓傳≫ 〈항백편巷伯篇〉에 “구불체문지녀嫗不逮門之女 이국인불칭기란而國人不稱其亂(성문으로 들어가지 못한 여인을 자기 체온으로 덥혀줬지만 온 나라에서 누구도 그를 음란하다고 말하지 않았다.)”이라고 말한 일이다. 비일일지문非一日之聞은 평소의 행위가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받았다는 말이다.
왕염손王念孫:살펴보건대, ≪종산찰기鍾山札記≫에 또 ≪여씨춘추呂氏春秋≫ 〈장리편長利篇〉을 인용하여 “융이위제여노戎夷違齊如魯 천대한이후문天大寒而後門(융이戎夷나라를 떠나 나라로 갔는데 날씨가 매우 추웠고 성문이 닫힌 뒤에 도착하였다.)”이라고 한 곳의
고유高誘 주에 “후문後門은 날이 저물어 성문이 이미 닫혔다는 뜻이다.”라 하고,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하外儲說左下〉에 “모이후暮而後 문폐門閉(날이 저문 뒤에 〈도착하니〉 성문이 이미 닫혀 있었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衣若縣鶉 : 縣은 ‘懸’과 같다. 옷이 낡아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곳을 바늘로 꿰매지 않고 그냥 잡아서 끌어당겨 끈으로 묶어놓아 동동하게 돌출한 모양새가 마치 꽁지 빠진 메추라기를 매어놓은 것과 같다는 뜻이다.
역주2 (之)[子] : 저본에는 ‘之’로 되어 있으나, 世德堂本의 의거하여 ‘子’로 바로잡았다.
역주3 : 체온으로 서로 따뜻하게 덥혀준다는 뜻이다.
역주4 [閉] : 저본에 ‘閉’가 없으나, ≪韓非子≫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순자집해(6)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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