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卑絻
은 與裨冕同
하니 衣裨衣而服冕也
라 裨之言
은 卑也
라 天子六服
에 大裘爲上
하고 其餘爲
라
라 諸侯以下皆服焉
이라 文織
은 染絲織爲文章也
라 資
는 與
同
하니 卽齊衰也
라
麤는 麤布也라 今麤布亦謂之資라 菲는 草衣니 蓋如蓑然이라 或當時喪者有服此也라
繐
는 繐衰也
라 鄭玄云 繐衰
는 小功之縷
니 之衰也
라 凡布細而疎者謂之繐
니 今南陽有鄧繐布
라하니라
王念孫曰 案富國篇曰 天子袾裷衣冕하며 諸侯玄裷衣冕하며 大夫裨冕하며 士皮弁이라하고
大略篇曰 天子山冕하며 諸侯玄冠하며 大夫裨冕하며 士韋弁이라하여 其制上下不同하니 此不當獨擧裨冕言之라
楊以卑絻爲裨冕하니 未是也라 卑絻은 疑當爲𢍍絻이니 𢍍은 卽今弁字라
弁絻黼黻文織은 皆二字平列이요 且弁絻二字는 兼上下而言이라
此篇曰 弁絻黼黻文織이라하고 君道篇曰 冠弁衣裳하고 黼黻文章이라하며
曾子問曰 天子賜諸侯大夫冕弁服이라하고 禮運曰 冕弁兵革이라하니라
昭元年左傳曰 吾與子弁冕端委라하고 九年傳曰 猶衣服之有冠冕이라하고
宣元年公羊傳曰 已練可以弁冕이라하고 僖八年穀梁傳曰 弁冕雖舊라도 必加於首라하니라
或言弁冕하고 或言冕弁하고 或言冠冕하고 或言冠弁하여 皆二字平列이요 且兼上下而言이라 故知卑絻爲𢍍絻之誤라
說文
에 㝸
은 冕也
라하니 에 作𢍍
하고 或作𢌮
이라
今經傳엔 皆作弁하여 而㝸𢍍𢌮三字遂廢라 此𢍍字若不誤爲卑면 則後人亦必改爲弁矣리라
注
楊倞注:卑絻은 ‘裨冕’과 같으니, 裨衣를 입고 면류관을 쓴다는 뜻이다. 裨라는 말은 낮다는 뜻이다. 천자가 입는 여섯 가지 冕服 가운데 大裘가 가장 높고 그 나머지는 裨衣이다.
섬기는 신의 높고 낮은 등급에 따라 〈제사 지낼 때 구분하여〉 착용한다. 제후 이하는 모두 〈
裨衣를〉 입는다.
文織은 염색한 명주실을 짜 문양을 만든 것이다.
資는 ‘
’와 같으니, 곧
齊衰이다.
麤는 거친 피륙이다. 오늘날에도 거친 피륙을 ‘資’라 이른다. 菲는 풀로 엮은 옷이니, 대체로 도롱이와 같은 것이다. 혹시 그 당시 喪中에 있는 자가 이것을 착용했을 수도 있다.
繐는 繐衰이다. 鄭玄이 “繐衰는 小功服의 올이니, 넉 새 반으로 만든 喪服이다. 일반적으로 피륙의 올이 가늘면서도 엉성한 것을 ‘繐’라 말하니, 지금 南陽 지방에 鄧繐布가 있다.”라고 하였다.
菅은 띠풀이다. ≪春秋左氏傳≫ 襄公 17년에 “晏子杖菅屨(〈晏桓子가 죽자 그의 아들〉 晏子가 대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신었다.)”라 하였다.
○盧文弨:〈楊氏의〉 주 ‘鄧繐布’는 지금의 ≪儀禮≫에는 ‘布’자가 없다.
王念孫:살펴보건대, 〈富國篇〉에 “天子袾裷衣冕 諸侯玄裷衣冕 大夫裨冕 士皮弁(천자는 붉은색의 곤룡포에 면류관을 쓰며 제후는 검은색의 곤룡포에 면류관을 쓰며 대부는 裨衣를 입고 면류관을 쓰며 士는 皮弁을 쓴다.)”이라 하고,
〈大略篇〉에 “天子山冕 諸侯玄冠 大夫裨冕 士韋弁(천자는 산 모양의 도안이 그려진 예복에 면류관을 쓰며 제후는 검은색의 관을 쓰며 大夫는 裨衣를 입고 면류관을 쓰며 士는 韋弁을 쓴다.)”이라 하여 그 제도가 지위의 상하에 따라 같지 않으니, 여기서 마땅히 ‘裨冕’만을 들추어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楊氏는 卑絻을 裨冕으로 풀이하였으니, 옳지 않다. ‘卑絻’은 아마도 마땅히 ‘𢍍絻’으로 되어야 할 것이니, ‘𢍍’은 곧 지금의 ‘弁’자이다.
弁絻‧黼黻‧文織은 모두 두 자가 같은 뜻으로 배열되었고, 게다가 ‘弁絻’ 두 자는 지위의 고하를 겸하여 말한 것이다.
이 편에서는 ‘弁絻‧黼黻‧文織’이라 말하고, 〈君道篇〉에 “冠弁衣裳 黼黻文章(관과 의상을 〈수식하고〉 예복에 각종 문양을 수놓는다.)”이라 하였으며,
≪禮記≫ 〈曾子問〉에 “天子賜諸侯大夫冕弁服(천자가 제후와 大夫에게 冕服과 弁服을 하사한다.)”이라 하고, ≪禮記≫ 〈禮運〉에 “冕弁兵革(冕服과 弁服, 병기와 갑옷)”이라 하였다.
또 ≪春秋左氏傳≫ 昭公 원년에 “吾與子弁冕端委(나와 그대가 弁服과 冕服의 예복을 입고 있다.)”라 하고, ≪春秋左氏傳≫ 昭公 9년에 “猶衣服之有冠冕(의복에 冠冕이 있는 것과 같다.)”이라 하고,
≪春秋公羊傳≫ 宣公 원년에 “已練可以弁冕(이미 小祥이 지난 뒤에는 弁服과 冕服을 착용할 수 있다.)”이라 하고, ≪春秋穀梁傳≫ 僖公 8년에 “弁冕雖舊 必加於首(관은 비록 낡았더라도 반드시 머리에 쓴다.)”라 하였다.
혹은 ‘弁冕’이라 하고 혹은 ‘冕弁’이라 하고 혹은 ‘冠冕’이라 하고 혹은 ‘冠弁’이라 하여 모두 두 자가 같은 뜻으로 배열되었고, 게다가 지위의 고하를 겸하여 말하였기 때문에 ‘卑絻’이 ‘𢍍絻’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다.
≪說文解字≫에 “㝸은 ‘冕’과 같다.”라 하였는데, 籒文에 ‘𢍍’으로 되어 있고 혹은 ‘𢌮’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지금의 經傳에는 모두 ‘弁’으로 되어 있어 ‘㝸’‧‘𢍍’‧‘𢌮’ 세 자는 마침내 폐지되었다. 이 ‘𢍍’자가 만약 ‘卑’로 잘못되지 않았더라면 후세 사람이 또한 반드시 ‘弁’으로 고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