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63 若夫非分是非하고 非治曲直하고 非辨治亂하고 非治人道하면 雖能之無益於人하고 不能無損於人이라
直
治怪說
하여 玩奇辭
하여 以相撓滑也
며 案彊鉗而利口
하고 厚顔而忍詬
하고 無正而恣睢
하고 妄辨而
利
하며
注
滑은 亂也니 音骨이라 彊은 彊服人이라 鉗은 鉗人口也라 詬는 詈也라
恣睢는 矜夸也라 幾는 近也라 妄辨幾利는 謂妄爲辨說하여 所近者惟利也라
○王念孫曰 方言
에 鉗
은 惡也
注+廣雅同이라라 南楚凡人殘駡謂之鉗
이라하여늘 郭璞曰 殘
은 猶惡也
라하니라
然則彊鉗者는 旣彊且惡也니 非鉗人口之謂라 詬는 恥也라 大戴禮曾子立事篇에 君子見利思辱하고 見惡思詬라하고
定八年左傳에 公以晉詬語之의 杜盧注에 竝曰 詬는 恥也라하여늘
字或作訽하고 昭二十年左傳에 余不忍其訽의 杜注曰 訽는 恥也라하여늘
又作㖃하고 大戴禮武王踐阼篇에 口生㖃의 盧注曰 㖃는 恥也라하여늘 又作垢라
宣十五年左傳
에 國君含垢
의 杜注曰 忍垢恥
注+ 漢書路溫舒傳엔 作國君含詬라라하니라 詬
는 訓爲恥
라 故曰 厚顔而忍詬
라하니 非謂忍詈也
라
楚辭離騷曰 忍尤而攘詬
注+王注에 詬는 恥也라하니라와 呂氏春秋離俗篇曰 彊力忍訽
注+高注에 訽는 辱也라하니라와 淮南氾論篇曰 忍訽而輕辱
과
史記伍子胥傳曰 剛戾忍訽 皆其證也라 非十二子篇의 無廉恥而忍𧫟訽 卽此所謂厚顔而忍詬也라
說文
에 謑
는 恥也
라하여늘 或作𧫟
라 詬謑
는 詬恥也
라 或作訽
注+廣雅엔 作𧫟詬라라 楊注以𧫟訽爲詈辱
하니 亦失之
라
兪樾曰 大玄玄瑩篇에 箝知休咎의 范望注曰 箝은 求也라하니라
鬼谷子有飛箝篇
이어늘 其文曰 以
之辭
로 鉤其所好
하여 以箝求之
라하니 此范望注所本
이라
鉗은 猶箝也라 彊鉗은 謂彊求也라 楊注以鉗人口釋之하니 非是라
만약 是非를 구분하지 못하고 曲直을 다스리지 못하고 治亂을 분별하지 못하고 인간의 도리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비록 논리를 잘 전개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아무런 손해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기괴한 담론을 늘어놓고 괴벽한 말을 구사하여 서로 세상을 혼란하게 할 뿐이며, 사람들을 강하게 굴복시키되 말주변이 좋고 낯가죽이 두꺼워 치욕을 감내하고 正道를 지키지 않아 방자하고 제멋대로 논리를 전개하여 이익만 추구하며,
注
楊倞注:滑은 어지럽다는 뜻이니, 그 음은 ‘骨’이다. 彊은 사람을 강하게 굴복시킨다는 뜻이다. 鉗은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한다는 뜻이다. 詬는 꾸짖는다는 뜻이다.
恣睢는 방자하다는 뜻이다. 幾는 가깝다는 뜻이다. 妄辨幾利는 제멋대로 논리를 전개하여 접근하는 것은 이익뿐이라는 것이다.
○
王念孫:≪
方言≫에 “
鉗 惡也注+≪廣雅≫도 이와 같다. 南楚凡人殘駡謂之鉗(
鉗은 포악하다는 뜻이다. 남쪽
楚 지방에서 대체로 사람이 사납게 꾸짖는 것을 ‘
鉗’이라 이른다.)”이라 하였는데,
郭璞이 “
殘은 ‘
惡’과 같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彊鉗이란 이미 힘이 강하고 또 사납다는 뜻이니,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한다는 말이 아니다. 詬는 부끄럽다는 뜻이다. ≪大戴禮記≫ 〈曾子立事篇〉에 “君子見利思辱 見惡思詬(君子는 이익을 보면 모욕을 당할까 생각하고 악행을 보면 부끄러움을 생각한다.)”라 하고,
≪春秋左氏傳≫ 定公 8년에 “公以晉詬語之(衛 靈公이 晉나라 사람의 모욕을 받았다고 그에게 말했다.)”라고 한 곳의 杜預와 盧陵 주에 모두 “詬는 부끄럽다는 뜻이다.”라 하였는데,
글자가 간혹 ‘訽’로 되어 있기도 하고, ≪春秋左氏傳≫ 昭公 24년에 “余不忍其訽(나는 그들이 수모를 당하는 것을 차마 견딜 수 없다.)”라고 한 곳의 杜預 주에 “訽는 부끄럽다는 뜻이다.”라 하였는데,
〈이 訽가〉 또 ‘㖃’로 되어 있기도 하고, ≪大戴禮記≫ 〈武王踐阼篇〉에 “口生㖃(남을 모욕하면 남이 나를 모욕하는 일이 생긴다.)”라고 한 곳의 盧辯의 주에 “㖃는 부끄럽다는 뜻이다.”라 하였는데, 〈이 㖃가〉 또 ‘垢’로 되어 있기도 하다.
≪
春秋左氏傳≫
宣公 15년에 “
國君含垢(국왕이 치욕을 감내하였다.)”라고 한 곳의
杜預 주에 “
忍垢恥(치욕을 감내하였다는 것이다.)”
注+≪漢書≫ 〈路溫舒傳〉에는 〈國君含垢가〉 ‘國君含詬’로 되어 있다.라 하였다.
詬는 부끄럽다는 뜻이므로 “낯가죽이 두꺼워 치욕을 감내한다.”라고 한 것이니, 꾸지람을 감내한다는 말이 아니다.
≪
楚辭≫ 〈
離騷經〉에 “
忍尤而攘詬(죄책을 감내하여 치욕을 씻으려네.)”
注+王逸의 주에 “詬는 ‘恥’의 뜻이다.”라 하였다.라 한 것과, ≪
呂氏春秋≫ 〈
離俗篇〉에 “
彊力忍訽(추진력이 강하고 치욕을 감내한다.)”
注+高誘의 주에 “訽는 ‘辱’의 뜻이다.”라 하였다.라 한 것과, ≪
淮南子≫ 〈
氾論篇〉에 “
忍訽而輕辱(치욕을 감내하고 모욕을 가볍게 여긴다.)”이라 한 것과,
≪史記≫ 〈伍子胥傳〉에 “剛戾忍訽(굳세고 사나우며 치욕을 감내한다.)”라 한 것이 모두 그 증거이다. 〈非十二子篇〉의 “無廉恥而忍𧫟訽(염치가 없어 모욕을 감내한다.)”가 곧 이곳의 이른바 ‘厚顔而忍詬’이다.
≪
說文解字≫에 “
謑는 부끄럽다는 뜻이다.”라 하였는데, 간혹 ‘𧫟’로 되어 있기도 하다.
詬謑는 곧 ‘
詬恥’이다. 〈
詬자는〉 간혹 ‘
訽’로 되어 있기도 하다.
注+≪廣雅≫에는 ‘𧫟詬’로 되어 있다. 楊氏의 주는 𧫟
訽를 꾸짖고 모욕하는 뜻이라고 하였으니, 이 또한 잘못되었다.
兪樾:≪太玄經≫ 〈太玄瑩篇〉에 “箝知休咎(길흉을 찾아내어 안다.)”라 한 곳의 范望 주에 “箝은 구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鬼谷子≫에 〈飛箝篇〉이 있는데, 그 글에 “以飛箝之辭 鉤其所好 以箝求之(飛箝의 말로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끄집어내어 환심을 사 그로 인해 그를 제어한다.)”라 하였으니, 이것이 范望 주의 근거이다.
鉗은 ‘箝’과 같다. 彊鉗은 강력하게 구하는 것을 이른다. 楊氏의 주는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한다는 말로 풀이하였으니,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