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荀子集解(1)

순자집해(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순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5-11 葉公子高 微小短瘠하여 行若將不勝其衣
葉公 楚大夫沈尹戌之子 於葉이라
名諸梁이요 字子高
楚僭稱王 其大夫稱公하니 白公亦是也
細也
葉音攝이라
○ 郝懿行曰 子高入國門不介冑하니 蓋由微小短瘠하여 行不勝衣故耳


섭공葉公 자고子高는 몸이 작고 허약하여 길을 걸을 때는 입은 옷조차도 이겨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양경주楊倞注 : 섭공葉公나라 대부大夫 침윤술沈尹戌의 아들이니, 땅에 식읍食邑을 하사받았다.
이름은 제량諸梁이고 자는 자고子高이다.
나라 군주가 참람하게 으로 자칭하고 그 대부는 으로 불렀으니, 백공白公도 이와 같은 경우이다.
’는 가늘다는 뜻이다.
은 음이 이다.
학의행郝懿行 : 백공白公의 변란 때 자고子高가 도성 문을 들어가면서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지 않았으니, 이는 사람이 작고 허약하여 길을 걸을 때 옷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食邑 : 군주가 신하에게 하사하여 대대로 먹고살 수 있도록 배려해준 封地를 말한다.
역주2 白公之亂 : 白公(?~B.C. 479)은 白邑에 봉해진 楚나라 白公 勝을 말한다. 그의 아버지 建이 화를 피해 鄭나라로 도망갔다가 鄭나라에 의해 살해되자, 원수를 갚기 위해 惠王 6년(B.C. 483)에 令尹 子西에게 鄭나라를 공격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子西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만 하고 군사를 출동시키지 않았다. 2년 뒤에 晉나라의 침공을 받은 鄭나라가 구원을 요청하자, 楚나라는 子西에게 鄭나라를 구원해주게 하였다. 이에 화가 난 白公이 惠王 10년(B.C. 479)에 용사 石乞 등과 함께 조정에서 子西와 子期를 죽이고 惠王을 위협하여 별궁에 안치한 뒤에 시해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屈固가 惠王을 업고 惠王 어머니의 궁으로 도망갔고 白公은 스스로 왕이 되었다. 한 달 뒤에 葉公 子高가 도성으로 들어가 惠王의 측근들과 함께 白公을 공격하였고, 패배한 白公은 산중으로 도망하여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春秋左氏傳 哀公 16년》

순자집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