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荀子集解(7)

순자집해(7)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순자집해(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1-41 曰
非吾子 無所聞之也라하니
孔子曰
君入廟門而右하여 登自하여 仰視榱棟하고 俛見几筵 其器存이나 其人亡하니 君以此思哀하면 則哀將焉而不至矣리오
謂祭祀時也 與阼同이라 亦椽也 哀將焉不至 言必至也
○ 盧文弨曰 正文將焉下 元刻有而字하니 下四句竝同이라 當訓爲能이니 若以爲衍이면 不應五句皆誤
楊注王霸篇云 而爲 皆語助也라하고 又齊策 管燕謂其左右曰 子孰而與我赴諸侯乎아하여늘 鮑彪注 辭也라하니 以而字作語辭亦可 然訓能이라야 語更順이라
高誘注呂氏春秋去私篇 南陽無令한대 其誰可而爲之 又注士容篇 柔而堅하고 虛而實 皆訓而爲能하고 其注淮南也亦然이라
易屯彖 宜建侯而不寧이라하여늘 釋文 辭也 鄭讀而爲能이라하니라 然則此焉而 正當讀爲焉能이니 不可易矣
王念孫曰 盧說是也 文選王文憲集序注 引此有而字 其引此無而字者 皆後人不知古訓而删之也 古書多以而爲能하니 詳見淮南人間篇이라


애공哀公이〉 말하였다.
“당신이 아니면 들을 데가 없습니다.”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군주께서 종묘宗廟의 대문으로 들어가 오른쪽을 지나서 동쪽 계단을 통해 당 위로 올라가 고개를 들어 서까래와 기둥을 보고 고개를 숙여 〈영위靈位인〉 궤연几筵을 보실 때 그 기물들은 남아 있으나 저 선조들은 이미 안 계시니, 군주께서 이를 통해 슬프다 생각하신다면 슬픈 감정이 어찌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양경주楊倞注:〈종묘에〉 제사 지낼 때를 이른다. 는 ‘’와 같다. 는 이 또한 서까래이다. 애장언부지哀將焉不至는 〈슬픈 감정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말이다.
노문초盧文弨:본문 ‘장언將焉’ 밑에 원각본元刻本에는 ‘’자가 있으니, 아래 네 구도 모두 동일하다. 는 마땅히 ‘’의 뜻이 되어야 하니, 만약 잘못 덧붙여진 것으로 본다면 분명히 다섯 구가 모두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씨楊氏의 〈왕패편王霸篇〉 주에 “는 모두 어조사이다.”라 하고, 또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에 “관연위기좌우왈管燕謂其左右曰 자숙이여아부제후호子孰而與我赴諸侯乎(관연管燕이 좌우에게 이르기를 ‘그대들 중에 누가 나와 함께 제후에게 망명할 수 있는가?’라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포표鮑彪의 주에 “는 어조사이다.”라고 하였으니, 자를 어조사로 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의 뜻으로 이해하여야 말이 더 순조롭다.
여씨춘추呂氏春秋≫ 〈거사편去私篇〉의 “남양무령南陽無令 기수가이위지其誰可而爲之(남양南陽에 현령 자리가 비었는데 누가 그 직무를 맡을 수 있는가?)”라 한 곳의 고유高誘 주와, 또 ≪여씨춘추≫ 〈사용편士容篇〉의 “유이견柔而堅 허이실虛而實(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담박하면서도 알차다.)”이라 한 곳의 고유 주에 모두 를 ‘’의 뜻으로 풀이하고, 그의 ≪회남자淮南子≫ 주에도 마찬가지이다.
주역周易둔괘屯卦단전彖傳〉에 “의건후이불녕宜建侯而不寧(마땅히 제후를 봉건封建하여 〈사방을 살펴 어루만져야 하니 일없이〉 편하게 있어서는 안 된다.)”이라 하였는데, ≪경전석문經典釋文≫에 “는 어조사이다. 정현鄭玄은 ‘’를 ‘’의 뜻으로 읽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언이焉而’는 곧 마땅히 ‘언능焉能’으로 간주해 읽어야 하니, 〈이와 같은 논리는〉 바꿀 수 없다.
왕염손王念孫노씨盧氏의 설이 옳다. ≪문선文選≫ 〈왕문헌집서王文憲集序〉의 이선李善 주에 이곳의 문구를 인용하였는데 그곳에 ‘’자가 있다. 이 문구를 인용하면서 ‘’자가 없는 경우는 모두 후세 사람이 ‘’자의 옛 뜻을 몰라 삭제한 것이다. 옛 문헌에는 ‘’가 ‘’의 뜻으로 된 경우가 많으니, 〈이에 관한 설명은〉 ≪회남자淮南子≫ 〈인간편人間篇〉의 고유 주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
역주1 胙階 : 阼階이다. 동쪽 계단이란 뜻으로, 주인이 오르내린다.

순자집해(7)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