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拑은 古掘字라 史記에 作城郭不集하고 溝池不掘이라하니라
文子曰 無伐樹木하고 無鉗墳墓라하니 鉗은 亦音掘이라 或曰 拑은 當作抇이니 篆文抇字與拑字相近하여 遂誤耳라하니라
○盧文弨曰 案甘聲之拑은 不當爲古掘字라 注前一說非하고 後一說當作抇이 是也라
正論篇에 大古薄葬이라 故不抇하고 亂今厚葬飾棺이라 故抇也라하고
又列子說符篇에 俄而抇其谷이라하고 呂覽節喪篇에 葬淺則狐狸抇之라하여 皆作抇字하니 知此拑字誤라
注
양경주楊倞注:겸拑은 옛날의 ‘굴掘’자이다. ≪사기史記≫ 〈예서禮書〉에 “성곽불집城郭不集 구지불굴溝池不掘(성곽을 높이 쌓지 않고 해자를 깊이 파지 않았다.)”이라 하였다.
≪문자文子≫ 〈상의上義〉에 “무벌수목無伐樹木 무겸분묘無鉗墳墓(수목을 베지 않고 무덤을 파내지 않았다.)”라 하였으니, 겸鉗은 또 다른 음이 ‘굴掘’이다. 혹자는 “겸拑은 마땅히 ‘골抇’로 되어야 하니, 전서체篆書體로는 ‘골抇’자와 ‘겸拑’자의 모양이 서로 가까워 그만 잘못된 것이다.
○노문초盧文弨:살펴보건대, 음이 감甘인 ‘겸拑’은 당연히 옛날의 ‘굴掘’자가 될 수 없다. 〈양씨楊氏의〉 주에서 앞의 설은 틀렸고 뒤에 마땅히 ‘골抇’로 되어야 한다는 설이 옳다.
〈정론편正論篇〉에 “대고박장大古薄葬 故不抇 난금후장식관亂今厚葬飾棺 고홀야故抇也(태곳적에는 간략하게 장사 지냈으므로 도굴을 당하지 않았고, 혼란한 지금은 후하게 장사 지내 관을 성대하게 꾸미므로 도굴을 당하게 된 것이다.)”라 하고,
또 ≪열자列子≫ 〈설부편說符篇〉에 “아이홀기곡俄而抇其谷(얼마 뒤에 그 산골짜기의 땅을 팠다.)”이라 하고, ≪여람呂覽(여씨춘추呂氏春秋)≫ 〈절상편節喪篇〉에 “장천즉호리골지葬淺則狐狸抇之(시신을 옅게 묻으면 여우와 살쾡이가 파낸다.)”라고 하여 모두 ‘골抇’자로 되어 있으니, 이 ‘겸拑’자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